전신CT스캔(컴퓨터 단층 촬영)은 이제까지 X선 촬영 장치로는 불가능했던 단층상(斷層像)을 촬영하거나 체내의 모든 부분을 관찰하고 질병을 진단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전신CT스캔이 오히려 암으로 인한 사망률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Radiology, 2004, vol. 232) 우리 몸에 숨어 있는 질병을 찾아내서 생명을 연장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생명을 단축시킬 수 있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 방사선 연구센터 연구진은 최근 보급이 확산된 전신CT스캔의 방사선 노출량을 조사했다. 연구 결과, 전신CT스캔을 한 번 받을 때 신체기관에 흡수되는 방사선 양은 14~21mSv(방사선 노출량을 측정하는 단위)로 나타났다. 이는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던 지역의 일본인들이 암에 걸리기 시작한 20mSv와 유사한 수준이다. 45세 성인이 전신CT스캔을 한 번 받을 경우 암으로 사망할 위험은 0.08%다. 1회의 전신CT스캔을 받은 1200명 중 1명이 암에 걸려 죽을 수 있다는 뜻이다. 전신CT스캔을 받는 횟수가 늘어나면 암으로 사망할 확률도 그만큼 높아진다. 만약 어떤 사람이 45세 때부터 75세가 될 때까지 매년 한 번씩 전신CT스캔을 받는다면 암 사망률은 1.9%로 높아진다. 50 중 1명이 암으로 사망한다는 뜻이다.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할 확률이 1.3%라고 하니, 빈번한 전신CT스캔이 얼마나 위험한지 짐작할 수 있다. 이 결과에 대해 연구진은 “심각한 증상이 나타난 환자의 정확한 질병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전신CT스캔을 해야 한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이 질병을 발견하기 위해서 하는 전신CT스캔은 말리고 싶다. 건강한 사람이 매년 또는 정기적인 신체 검사에서 전신CT스캔을 받는 경우 가장 위험하다. 종합적으로 판단해 볼 때 45세 이하의 건강한 사람이 전신CT스캔을 받는다면 득보다 실이 많다”고 결론지었다. 전신CT스캔의 장점은 X-선 촬영으로 파악하기 힘든 작은 크기의 종양이나 심장 질환을 발견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의료기관들은 원하는 사람들에게 전신CT스캔을 해 주고 있다. 심지어 일부 의료기관들은 환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전신CT스캔을 받아보라고 권장한다. 그러나 미국방사선의학회(ACR)는 건강한 사람이 질병 유무를 파악하기 위해 전신 CT 스캔을 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다. 미국방사선의학회 회장인 보르그스테드 박사는 “사람들은 전신CT스캔을 받으면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여 더 오래 살 것으로 생각하지만, 전신CT스캔을 받은 사람들이 더 오래 산다는 증거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연구는 전신CT스캔에는 위험이 따른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여, 전신CT스캔을 남용하는 현실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의료 분야에서 첨단 과학기술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이기’가 아닌 ‘흉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글-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