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지공간 가까이 살면 장수한다

집 주변에 ‘산책할 수 있는 녹지공간(walkable green space)’이 있는 노인들이 그렇지 않은 노인들에 비해 더 오래 산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Journal of Epidemiology and Community Health 제56호, 913-918쪽, 2002)

막연히 녹지공간이 있어서 ‘살기 쾌적하다’는 차원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녹지 공간이 ‘생명 연장’이라는 건강 편익을 준다는 점이 입증된 것이다.

일본 도쿄대학 의대 연구진은 거주지 주변에 녹지공간의 존재와 이 곳에 거주하는 노인들의 수명 사이에 서로 연관성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연구대상은 도쿄 지역에 거주하고 1903, 1908, 1913, 1918년에 태어난 노인 3,144명(남성 1339명, 여성 1805명)이었다. 1992년에 연구를 시작하면서 물리적 주거환경, 건강상태, 생활습관, 경제적 수준 등의 기초실태를 조사했고, 5년이 지난 1997년에 이 요인과 생존 비율 사이의 연관성을 살펴봤다.

연구가 끝난 1997년까지 3,144명 중 897명이 사망했는데, 여성의 생존률(75.2%)이 남성(65.9%)보다 높았고, 예상대로 연구를 시작할 당시에 연령이 높았던 사람들이 5년 뒤에 사망한 비율도 높았다.

집 주변에 녹지공간이 있다고 응답한 노인들이 5년 후에도 생존한 비율이 13~17% 가량 높았다. 이는 남녀 모두에게 동일하게 나타났고, 통계적으로도 의미 있는(우연히 나타난 결과로 볼 수 없는) 결과였다.

집 주변에 공원이나 나무의 수가 많을수록, 집에 햇볕이 드는 시간이 길수록, 현재 살고 있는 동네에서 계속해서 살고 싶다고 응답한 사람일수록 5년 후의 생존률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주거지 주변의 소음수준’은 남성 노인들의 수명에만 영향을 미쳤고, ‘이웃과의 활발한 교제여부’는 여성 노인들의 수명에만 영향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주거지의 치안상태’와 집에 정원이 있는지 여부는 남녀 노인들의 수명과 연관성이 없었다.

이 결과에 대해 연구자들은 “주거지 주변에 녹지공간이 있으면, 노인들이 밖으로 나와 운동을 비롯한 야외활동을 할 기회가 더 많이 생길 것이고, 이것이 노인들의 정상적인 신체 기능 유지와 심혈관계 질환의 예방에 도움을 주어서, 궁극적으로 생명연장이라는 결과로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또한 “주변에 녹지공간이 있으면 대기오염 개선효과도 있으므로 생명연장에 긍정적 영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건강하고 경제적 수준이 높을수록 장수한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한다. 이 연구결과에서 주목할 점은 수명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로 꼽히는 연령, 건강상태, 성별, 생활습관, 경제적 수준 등을 모두 고려한 뒤에도 녹지공간의 영향력이 독립적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나이, 건강상태, 성별, 사회경제적 수준이 같아도 집 주변에 녹지공간이 있는 사람의 수명이 더 길었다는 얘기다.

서울에서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인구밀도(도쿄-13,050명/km2. 1997년 기준), 서울(16,978명/km2. 2002년 기준)와 도시 전체 면적 중 녹지가 차지하는 비율(도쿄 29%. 1997년 기준), 서울(1.3%. 2000년 기준)을 비교할 때 서울이 더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으므로, 서울에서 녹지공간이 가져올 건강 편익이 도쿄에서보다 크면 컸지 작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녹지공간의 이점이 농촌 지역보다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 지역에서 더 크다는 기존의 연구 결과들을 고려해도 이 예측이 크게 빗나가지 않을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도 생활수준의 향상과 의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평균수명의 증가로 노인 인구 비중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녹지공간이 대기오염의 개선효과뿐만 아니라 현재의 건강수준과 경제수준에 무관하게 생명연장의 혜택까지 줄 수 있음을 생각할 때 도심 녹지공간을 가꾸고 늘려가는 정책은 더욱 큰 힘을 얻는다.

글-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