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계절 여름, 슬기롭게 보내면 겨울까지 건강

바쁘게 살다 보면, 겨우내 움츠렸던 가슴을 좀 펴나 싶더니 어느새 봄을 지나 여름 무더위로 내닫게 마련이다. 비록 풍광의 변화를 만끽할 여유는 없다 하더라도 우리 몸은 계절의 변화를 절실히 느낀다. 계절은 인간의 건강에 크고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다. 여름을 예로 들어 계절과 건강의 관계를 살펴보자.

과거에는 겨울철 대기오염이 가장 큰 문젯거리였다. 집집마다 난방용 연료로 석유, 무연탄과 같은 화석연료를 주로 썼기 때문에 아황산가스(SO2)와 미세분진(PM) 농도가 겨울철에 가장 높았다. 그러나 요즘에는 난방 취사 연료로 천연가스 등의 ‘저오염’ 물질이 주로 사용되면서 겨울철 대기오염 수준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낮아졌다. 대신 자동차 배기가스에서 나오는 질소산화물(NOx) 등이 강렬한 태양빛과 반응하여 오존(O3)과 같은 ‘광화학 스모그(smog)’ 물질이 대량 생성되는 여름철이 대기오염 측면에서 가장 심각한 계절로 바뀌었다. 특히 여름에는 창문을 열어 놓거나 밖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겨울철보다 대기오염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우리 나라도 대기오염의 주범은 화석연료이며, 패턴도 기온역전(temperature inversion) 현상이 자주 일어나는 겨울철에 주로 발생하는 ‘런던 스모그’ 형에서 여름철에 자동차 배기가스에 의한 ‘로스앤젤레스 스모그’ 형을 보이는 추세다.

오존은 천식 같은 호흡기질환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키는 물질로, 어린이와 노약자, 기존의 호흡기질환자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힌다. 아스팔트도 녹을 듯한 한여름 오후에 ‘오존주의보’가 내려진 날에는 건강한 사람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계절은 주로 대기오염과 관련해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지만, 때로는 그 자체로도 해를 끼친다. 하버드 대학 보건대학원의 오닐 박사팀은 미국의 7개 도시를 대상으로 6년 동안 연구를 실시한 뒤 ‘극심한 더위나 추위가 지나간 뒤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기오염의 영향이 아닌 순수하게 ‘기온’의 작용만 봤을 때 그렇다는 뜻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기록적인 더위를 기록했던 1994년에 초과사망자 수가 크게 늘어났다. 그때 가장 큰 피해를 본 연령층은 노인층이었다. 기후가 질병만큼이나 사망률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입증한 사례다.

하버드 대학 연구팀은 지난 55년간 3천만 건의 ‘심장동맥사(coronary death)’ 사례를 분석한 또 다른 대규모 연구의 결과도 내놨다. 이에 따르면 여름과 겨울에 냉난방 시설이 잘 갖춰진 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사망률이 낮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혈압조절, 금연, 올바른 식습관 등 기본적으로 중요한 요인 외에 집안의 온도조절 능력과 같은 사회경제적 영향이 사망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저소득층 사람들이 심장동맥사 비율이 더 높다는 기존 연구들도 이번 결과와 같은 맥락이다.

여름이 인간에게 끼치는 피해는 또 있다. 스웨덴의 연구진은 여름철에 태어난 아기일수록 ‘만성소화장애증(coeliac disease)’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여름에는 이 질병을 일으키는 위험요인에 노출될 기회가 더 많기 때문이다. 만성소화장애증은 한번 걸리면 보통 평생 지속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아침식사 단골메뉴인 시리얼을 먹기가 힘들다. 시리얼에 든 ‘글루텐(gluten)’이라는 단백질에 과민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름은 정신건강 관리를 위해 매우 귀중한 시기다. 여름철에 햇볕을 많이 쬔 사람들이 겨울철에 우울한 기분을 덜 느끼게 된다는 연구결과가 여럿 있다.

울에는 일조량이 적어 우울증이 나타나기 쉽다. 여름에 햇볕을 많이 쬐면 ‘비타민D’ 합성량이 증가하는데, 이것이 몇 달 뒤에 기분을 좋게 만드는 호르몬인 ‘세로토닌(serotonin)’의 농도를 체내에서 높게 유지시키는 작용을 해서 궁극적으로 겨울철 우울증 예방에 기여한다. 태양광선에는 피부암을 유발할 수 있는 유해한 자외선이 들어 있으므로 이를 염두에 두고 햇볕 앞에 나가야 한다. 전문가들은 자외선 피해가 가장 적은 기상 직후의 이른 아침 햇살을 쬐라고 권한다.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자외선 차단제를 꼭 발라야 한다. 점심 식사 후에 잠깐 차를 마시며 볕을 쬐는 것도 좋다. 여름을 슬기롭게 보내면 겨울도 즐겁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계절은 언제나 현명하게 나는 사람의 편이다.

글-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