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난화의 뜨거운 맛

최근 지구촌 곳곳에서 들려오는 이상기후 소식이 예사롭지 않다. 뚜렷한 사계절을 자랑하던 우리 나라에서도 봄과 가을은 점점 귀한 손님이 되고 있다. 대개 문제가 되는 기후변화는 평균기온의 상승이나 홍수, 가뭄과 같은 극단적 기상 현상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특히 20년 동안 지구의 기온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산업활동의 부산물인 이산화탄소와 메탄 같은 ‘온실가스’의 과다방출이 기온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위도가 높아질수록 상승폭이 크다. 캐나다의 경우 1961년부터 1990년 사이에는 섭씨30도를 웃도는 날이 일년에 이틀에서 나흘밖에 없었지만, 2001년 여름에는 자그마치 24일이나 되었다.
이상기후는 인간의 건강에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 기후가 병원체, 숙주, 매개체, 천적 등 질병 전파와 관련된 모든 요소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스(SARS)’와 같은 새로운 질병이 출몰하고,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생각했던 질병이 힘을 키워 다시 나타나는가 하면, 동물들만의 질병으로 여겨지던 것이 인간에게도 전파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1970년대 이후로 30여 개의 새로운 질병이 출현했다. 이 현상의 근본원인으로 기후변화만 탓할 수는 없겠지만, 전문가들은 국제간 교류의 증가와 함께 기후 변화가 깊이 연루되어 있으리라 굳게 믿고 있다.

예를 들어, 모기는 기온변화에 특히 민감한 곤충이다. 모기의 알이 부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기온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20°C에서는 2.5일, 33°C에서는 33시간이 걸리고, 부화해서 다 자랄 때까지 20°C에서 20일, 31°C에서는 7일밖에 걸리지 않는다. 기온이 상승할수록 더 빨리 성숙하여 질병 전파력이 커진다.

극심한 가뭄 뒤에 내리는 폭우도 치명적인 질병을 퍼뜨린다. 1993년 미국 남서부 지방에서 ‘유행성출혈열’이 대유행했다. 극심한 가뭄으로 올빼미, 매, 뱀 등과 같은 설치류의 천적이 급격히 줄어든 상황에서 폭우가 쏟아지자, 먹이 찾기가 쉬워진 설치류의 개체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유행성출혈열을 일으키는 ‘한타바이러스(hantavirus)’도 설치류에게 급속히 퍼져나갔다. 그 후 다시 가뭄이 들자 설치류는 먹이를 구하러 인간의 거주지를 넘나들었다. 이 무렵 유행성출혈열이 집단적으로 발생했던 까닭도 설치류의 배설물에 섞여 있던 한타바이러스가 호흡기를 통해 인체에 침입했기 때문으로 짐작한다.

1999년 뉴욕 지역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한 ‘웨스트나일바이러스(West Nile Virus, WNV)’ 감염증 사례도 한타바이러스의 경우와 비슷하다. 1998년 말의 푸근한 겨울이 지나간 뒤, 1999년 여름에 곧바로 기록적인 무더위와 가뭄이 찾아왔다. 이 과정에서 모기의 천적들이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고, 새들은 물을 찾아 모기 서식지를 기웃거렸다. 폭염 때문에 WNV는 모기 체내에서 더 빨리 성숙되었고, 많은 새가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었다. 새의 숫자가 줄어들자 모기는 대상을 바꾸어 인간의 피를 찾게 되었고, 때마침 내린 폭우가 모기의 번식지를 넓혀주는 바람에 뉴욕주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도 WNV에 감염되었다.

조류들만의 질병으로 여겨지던 WNV감염증이 최근에는 인간에게도 전파되는 질병으로 변질되었다. 모기가 WNV에 감염된 조류를 문 뒤 사람을 물면 사람도 WNV에 감염된다. 이 병에 걸리면 건강한 성인은 감기 비슷한 증세를 보이다가 곧 회복되지만,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나 어린이는 중추신경계가 교란되어 사망할 수도 있다. WNV는 이제 미국의 44개 주로 번져나갔고, 230여 종의 동물과 130여 종의 조류를 감염시킨 ‘슈퍼 병원균’으로 성장했다. 아직까지 우리 나라에서 WNV 감염 사례가 보고된 적은 없지만 안심할 수 없다. 주변에 죽은 새가 있으면 빨리 치우고 모기의 번식지를 제거하는 것이 WNV의 확산을 막는 효과적인 예방책이다.

따뜻한 겨울 뒤에 찾아오는 덥고 건조한 여름은 ‘뇌염’과 ‘라임병(lyme disease)’ 등이 발생할 위험을 높이는 전형적 계절 패턴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여름철 홍수도 가축의 분뇨를 휩쓸어가 각종 수인성 질환의 발생 위험을 높인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가 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려 질병 발생을 부추긴다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범세계적인 노력이 어느 때 보다 절실하다. 그럼에도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전세계가 합의한 ‘교토의정서’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미국, 그리고 가난한 개발도상국들에게 ‘개발저지’를 강요하며 해결책을 찾는 선진국들의 이기적 행태를 지켜보면, 지금 세대는 지구 온도 상승이 불러올 ‘뜨거운 맛’을 아직 깨닫지 못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글-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