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햇빛은 항암 항우울제

햇빛이 점점 귀한 손님이 되고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일조시간(태양 광선이 구름이나 안개에 가려지지 않고 땅 위에 비친 시간)이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서울지역의 경우 1980년대의 6.1시간, 1990년대의 6.0시간이었던 하루 평균 일조시간이 2002년과 2003년에는 4시간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날씨가 우울한 도시로 손꼽히는 영국의 런던과 같은 수준이다. 서울과 같은 위도에 있는 경기도 양평지역의 하루 일조시간이 2002년 8.1시간, 2003년 6.6시간인 것과 비교할 때 서울의 일조시간은 현저히 짧다.

일조시간은 왜 줄어들까? 이에 대해 여러 가지 가설이 제기되고 있지만, 자동차 배기가스, 화석연료의 연소, 산불 등에서 비롯한 대기오염이 심해졌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석탄이나 석유 같은 화석연료가 연소되는 과정에서 대기 중으로 방출된 미세한 연무(aerosol)는 수증기의 응결핵으로 작용하여 구름을 만들고, 이 구름은 햇빛을 반사해서 지상에 도달하는 햇빛을 차단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중국과 미국의 공동 연구진이 지난 50년 동안 중국에서 화석연료 사용이 일조시간에 미친 영향을 조사한 결과, 화석연료 사용량과 일조시간 사이에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아마존 밀림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사건 후 일조량이 16% 감소했고,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삼림을 태우는 관습 때문에 일조량이 22%나 줄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햇빛은 이것에 과도하게 노출될 경우 피부화상, 피부노화, 피부암, 햇빛 알레르기, 백내장 등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 요인이다. 그래서 지난 수십 년간 피부과 의사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피부 노출을 삼가고 외출할 때는 햇빛의 자외선을 막아주는 차단제를 수시로 바르라고 조언해왔다. 그러나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일조시간 감소현상이 나타나면서 이런 조언도 흔들리고 있다. 일조시간 감소로 인한 인체의 피해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수준보다 심각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햇빛은 체내 비타민 D 생산에 관련된 가장 중요한 요소다. 비타민 D는 장내 칼슘성분의 흡수를 도와 건강한 뼈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비타민 D가 부족하면 ‘골다공증’이나 ‘골연화증’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 빅토리아시대 슬럼가에서 유행했던 구루병(일명 곱추병)이 날씨가 궂고 일조시간이 짧은 북유럽에서 최근 다시 등장하는 사례도 일조량 감소와 무관하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 발표된 연구들은 비타민 D 부족이 근육골격계 질환 외에 당뇨병, 고혈압, 나아가 유방, 전립선, 난소, 식도, 림프조직의 암 발생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지속적으로 보고하고 있다. 비타민 D는 세포의 과도한 성장을 막고 그것이 암세포로 발전하는 것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므로, 결핍되면 그만큼 암 발생 위험도 높아진다는 것이 이들 연구의 결론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윌리엄 그랜트 박사는 오존 관련 자료를 다루다가 우연히 미국의 지역별 암 사망률을 조사하게 되었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북동부 지역 주민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결장암, 유방암, 전립선암에 현저하게 많이 걸린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추운 지역 사람들이 고지방 식습관을 가진 경우가 많고, 지방을 많이 섭취하면 암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단순한 식습관의 차이가 이렇게 뚜렷하게 암 발생률의 차이를 가져오기는 힘들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따뜻한 남쪽지역 주에 사는 사람들이 야외활동 시간이 많으므로 체내 비타민 D 생산량도 많으리란 점에 착안하여 지역별 자외선 강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자외선 강도가 낮은 지역의 사람들이 유방암을 비롯한 13개 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뚜렷이 높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랜트 박사는 매년 미국에서 피부암으로 만여 명이 사망하지만, 햇빛 부족으로 죽는 사람도 2만 명이 넘는다면서 햇빛을 무조건 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위도가 높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적도 근처에 사는 사람들보다 전립선암과 결장암 발생률이 높았다는 연구, 남성 4백 여명을 대상으로 일생 동안 햇빛 노출량을 조사한 결과 햇빛을 쬔 시간이 가장 적은 사람이 가장 많은 사람에 비해 전립선암에 걸린 비율이 3배나 높았다는 연구 등도 햇빛이 암 발생과 연관되어 있음을 뒷받침하는 사례들이다.

비타민 D의 효능은 의외의 곳에서도 발휘된다. 스위스의 바젤 대학 연구진은 석 달 동안 비타민 D와 칼슘을 동시에 복용한 여성 노인들이 칼슘만 복용한 사람들에 비해 낙상 위험이 49%나 줄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과거에 여러 번 낙상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비타민 D 섭취로 가장 많은 혜택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햇빛은 정신건강 측면에서도 매우 귀중한 자원이다. 햇빛이 우울증을 막는 천연 ‘항우울제’이기 때문이다. 일조량이 부족한 겨울철에는 집중력 저하, 피로감, 무력감, 흥미상실, 시무룩함 등 ‘계절성 정서장애(seasonal affective disorder)’ 증상을 겪는 사람이 적지 않다.
2002년 호주 연구진이 101명의 건강한 남성을 대상으로 기상요소와 혈중 ‘세로토닌(serotonin)’ 양을 비교한 결과 세로토닌 양은 계절에 관계없이 기상요소 중 유일하게 햇빛을 쬔 시간과 연관된 것으로 밝혀졌다. 세로토닌은 인간의 기분을 상승시키는 호르몬으로,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은 세로토닌이 현저히 줄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북반구에 사는 정신분열증 환자 17만여 명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위도가 높은 지역 출신이 많았다는 사실도 햇빛이 정신적 질환과 관련 있음을 시사한다. 위도가 높을수록 태양 광선은 더 먼 거리를 여행해야 하므로 대기를 뚫고 지표면에 온전히 도달하기 힘들다. 남반구 사람들은 같은 위도의 북반구 사람들에 비해 약 15% 더 많은 햇빛을 받으며 살아간다. 공업화된 북반구에 비해 남반구 지역은 대기오염이 덜 하고 태양과의 각도도 햇빛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햇빛은 태아의 두뇌 발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산모가 임신 기간 동안 충분한 햇빛을 쬐지 못하면 비타민 D 결핍으로 인해 태아의 두뇌 발달이 저해되어 정신분열증을 가진 아기가 태어날 위험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그것이다. 유럽과 북미지역에서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 중에 봄철에 태어난 비율이 높다는 사실도 설득력을 더해준다. 기존 연구들을 종합해볼 때 계절적 요인이 유전적 요인보다 정신분열증 발생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햇빛이 건강을 지키는 파수꾼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지만, 과하면 건강을 해치기도 한다. 따라서 햇빛을 쬐더라도 적당하게 쬐어야 한다. 적당한 햇빛의 기준은 위도와 계절, 하루 중 시간대에 따라 다르다. 대체로 전문가들은 하루에 10분씩 일주일에 3번 정도 피부에 직접 햇빛을 쬐면 피부암 걱정 없이 인체가 필요로 하는 충분한 양의 비타민 D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렇지만 여름 해변에서는 맨 살 노출 시간이 10분 이상 길어질 때에는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야 하고, 하루 중 유해 자외선 함량이 높은 오전 11시~3시의 햇빛보다는 오전 10시 이전의 햇빛을 쬐는 것이 이롭다고 덧붙였다.

만약 햇빛을 접할 기회가 적은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어 비타민 D 결핍이 우려되는 사람이라면 음식을 통해 보충할 수도 있다. 비타민 D가 풍부한 음식으로는 치즈, 우유, 달걀, 간유, 연어, 참치, 굴 등이 있다.

글-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