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피해를 막아야 건강한 여름

|| 죽음을 부르는 더위 ||
1995년 7월 미국 시카고에 기록적인 무더위가 닥쳤다. 7월 평균기온이 24.3℃로 서울과 비슷한 이곳이 7월 12~20일 사이에 연일 최고기온은 34~40℃를 오르락내리락하더니, 급기야 사망자가 514명이나 발생했다. 이 지역 인구 10만 명당 12명이 죽은 것이다. 응급실에는 평소보다 3300건이나 많은 환자가 실려와 북새통을 이루었다. 시신보관소마저 만원이라 시신을 냉동트럭으로 옮기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지구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1850년 기온 측정이 시작된 이래 지구의 평균기온은 약 0.6℃ 상승했다. 기상 전문가들은 다음 세기에는 기온 상승폭이 1.8~5.8℃로 커지리라 전망한다. 이 정도가 뭐 대수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는 마지막 빙하기 이후 일어난 기온 변화와 맞먹는다. 더 큰 문제는 상승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메탄 같은 온실가스의 배출량이 급격히 늘어나서 빚어진 ‘지구 온난화 현상’이 주된 원인이다.

2004년 5월 우리나라 기상청은 올 여름에 1994년에 이어 10년 만에 또다시 폭염이 찾아올 것이라는 예보를 내놓았다. 한반도의 여름철 기후를 예측하는 데 유용한 지표로 사용되는 티베트 고원 적설량이 금년 봄에 예년보다 적었다는 게 근거다. 티베트 고원의 적설량이 적으면 그 해 우리나라 여름은 고온 건조한 기후가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 5월말~6월 중순에 일 최고기온이 30℃를 넘는 날도 많았고, 전국 곳곳에서 1994년에 세워졌던 각종 기록이 깨졌다. 기상청예보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 발생시기에 따라 위험도 달라 ||

‘폭염’은 일정 온도 이상의 기온이 수일 동안 지속되는 현상을 말한다. 폭염의 정의는 나라마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인구 집단에 따라 고온의 영향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기상청에서는 32.2℃를 초과하는 날이 연속해서 3일 이상 되면 폭염이라 하고, 같은 미국 안에서도 텍사스 주 달라스 지역에서는 37.8℃를 넘는 날이 3일 넘게 계속되어야 폭염으로 본다.

폭염이 발생하면 인체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인간은 고온 환경에 노출되면 신체의 열을 적극적으로 방출해서 정상체온(36.5~38℃)을 유지하려고 한다. 여기에는 크게 3가지 기전이 작용한다. 첫째, 피부에 장착된 외부온도 감지 ‘센서’가 작동하여 온도 정보가 체온조절 본부에 전달되고, 본부는 피부혈관을 확장시켜 피부의 혈액 순환을 더 원활히 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 결과 피부의 온도는 높아지고 복사현상에 의해 더 체열은 체열이 방출된다. 이 과정에서 심박출량이 증가하고 맥박도 빨라진다. 둘째, 피부를 통한 열 방출만으로 정상 체온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될 경우 신체는 추가로 땀을 배출시켜 체온을 떨어뜨린다. 1cc의 땀은 0.58kcal의 열을 밖으로 내보내는 효과가 있다. 셋째, 체온을 떨어뜨리기 위해 음식 섭취는 줄이고 수분 섭취는 늘리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여름에 식욕이 떨어지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렇듯 인간은 일시적으로 고온 환경에 직면하면 체온을 떨어뜨려 고온에 대응해 나가지만, 고온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신체의 특성을 그에 맞도록 근본적으로 바꿔나간다. 이를 ‘고온 순화(馴化)’라고 한다. 고온에 순화된 사람은 같은 양의 땀을 흘리더라도 땀 속의 염분 양이 적다. 폭염이 찾아왔을 때 우리나라처럼 온대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열대지방 사람들보다 더 큰 피해를 입는 까닭도 순화작용에서 찾을 수 있다. 열대지방 사람들은 평소에 고온에 대해 생리적·문화적으로 적응이 잘 되어있어 폭염의 충격을 덜 받는다. 폭염 현상이 초여름에 나타날 때 더 큰 영향을 발휘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늦여름에는 이미 어느 정도 더위에 순화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지역에서는 1980년 여름에 폭염 때문에 많은 사망자가 나왔지만, 1995년에 닥친 폭염에는 피해가 크지 않았다. 분석 결과, 1995년 폭염은 1980년 폭염에 비해 늦게 시작된 데다가 지속된 기간도 짧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폭염 발생시기의 중요성을 잘 보여 준 사례다.

|| 열사병에서 대기오염까지, 폭염 피해의 심각성 ||

폭염이 인체에 끼치는 피해는 식욕부진에서부터 사망까지 매우 다양하다. 폭염으로 인한 질병 중 대표적인 것이 ‘열사병(熱射病)’이다. 열사병은 장시간 고온 환경에 노출되어서 열 방출 기능이 망가져서 심부체온(내장 등 몸 속 깊은 곳의 체온)이 상승하여 일어나는 질환이다. 과도하게 땀이 많이 나서 땀샘이 피로해져 더 이상 땀이 나지 않는 상태로 발전하고 그래서 체열이 방출이 되지 않아 열사병이 생기는 것이다. 더울 때 오랫동안 격렬한 운동이나 육체적 활동을 하는 경우에 발생 위험이 높다. 군대에서 고온 다습한 날에 야외훈련을 자제하는 것도 열사병 방지를 위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본격적인 열사병 상태에 이르기 전에 두통, 메스꺼움, 구토, 무력감, 권태감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여기서 더 진전되면 직장(直腸)의 온도가 40℃를 넘고, 땀이 안 나면서 피부가 잿빛을 띤다. 이때는 옷을 벗기고 물을 끼얹거나 사지를 주무르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체온을 낮춰야 한다. 열사병은 조기에 체온을 떨어뜨리지 못하면 사망할 수도 있는 위험한 응급질환이다.

폭염은 심혈관계와 뇌혈관계에도 간접적으로 피해를 끼친다. 폭염이 발생하면 우리 몸은 체온 상승을 막기 위해 심박출량을 증가시키는데, 이는 심장질환이나 뇌혈관질환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부담이 된다. 자칫하면 상태가 악화되어 사망할 수도 있다. 1994년 여름의 유래 없는 폭염으로 그 해 7~8월 사이에 전년도나 이듬해보다 훨씬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특히 심혈관계질환으로 인한 사망자가 많았다고 한다.

폭염과 관련해 사망한 사람들을 보면 기존의 심혈관, 뇌혈관, 호흡기 질환 등으로 임종이 임박한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일부는 특별히 폭염 외에 다른 원인을 찾아볼 수 없는, 순전히 폭염 때문에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경우도 다수 포함되어 있어 위험성을 짐작할 수 있다.

폭염은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아기에게도 피해를 끼친다. 더위가 심한 지역에서 태어난 아기들은 2.5kg 미만의 저체중일 비율이 높고, 태어난 지 1년 안에 사망하는 영아 사망률도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폭염 기간 동안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밤 동안의 최저기온이 높다는 것이다. 야간 최저기온이 25℃ 이상인 ‘열대야’ 현상이 나타나면 잠을 이루기 힘들어진다. ‘수면 호르몬’으로 알려진 멜라토닌과 체온은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열대야와 같은 상황에서는 멜라토닌 분비량이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한다. 잠도 잘 오지 않고 수면의 질도 떨어지기 쉬우며, 궁극적으로 피로감 증가와 집중력 저하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지만 열대야로 밤잠을 설친 다음날 낮잠 시간을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낮잠을 많이 자면 다시 밤잠을 설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열대야가 나타난 날에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가볍게 샤워해서 체온을 낮추는 게 좋다.

폭염은 대기오염도 악화시킨다. ‘오존’은 자동차 배기가스 등에서 방출되는 질소 산화물이 태양빛과 반응하여 만들어지는 2차 오염물질이다. 그래서 빛이 강하고 기온이 높은 환경에서는 농도가 높아진다. 오존은 호흡기를 통해 인체에 침입한 뒤 점막을 자극하여 각종 호흡기질환을 일으키고, 천식 증세를 악화시킨다. 또한 오존 농도가 높은 지역에서 사망률이 높다는 보고도 계속 나오고 있다.

|| 정부 차원의 폭염 대비책 세워야 ||

폭염으로 발생한 인체 피해에 대해 온도 탓만 할 수는 없다. 고온이라는 물리적 환경 외에 다른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폭염으로 인한 사망 사건의 경우 ‘나이’가 가장 중요한 요소로 나타났다. 노인들은 체온조절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심혈관계 기능과 땀 분비 능력이 저하되어 있기 때문이다. 심혈관계 및 호흡기계에 만성질환을 가진 사람들도 동일한 폭염 환경에서 더 큰 피해를 입기 쉽다. 주거지역도 중요하다. 같은 조건이라면 농촌보다 도시 거주자가 폭염의 피해를 더 크게 입을 가능성이 있다. 도시지역에서는 인공적인 열이 많이 발생하고, 고층건물들이 통풍을 막아 열기의 원활한 이동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한 주거지에 냉방시설이 되어 있는지, 그것을 불편 없이 가동할 만큼 전력공급 사정은 좋은지, 폭염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제때 적절히 치료할 의료체계는 마련되어 있는지 등 사회경제적인 요소도 폭염 피해의 정도에 영향을 끼친다. 1995년 시카고 폭염의 희생자 대부분이 만성질환자, 자신을 스스로 돌볼 수 없는 사람, 독거노인, 냉방시설이 없는 집에 사는 사람, 그리고 건물 최고층에 살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은 폭염의 피해가 단지 고온 때문만은 아님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폭염의 피해를 줄일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까? 폭염이 발생하면 외출과 육체적 활동을 자제하고, 시원한 실내에 머물면서 수분 섭취에 신경 써야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근본적으로 대책은 폭염을 예측해 알려주는 조기경보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미국 기상청에서는 일 평균 온도와 습도를 기준으로 한 온열지수가 낮 동안 40.6℃에 이르고 야간의 최저 온도가 26.7℃를 넘는 상황이 적어도 48시간 동안 지속되면 ‘폭염 주의보’를 발령한다. 건강정보와 기상정보를 접목한 보건기상 예보시스템은 현재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 중국 등에서 이미 가동 중이며,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 발생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폭염과 같은 기상재해의 피해자가 대부분 사회적 약자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정부 차원에서 제공되는 보건기상 서비스는 사회적 불평등 해소에도 기여할 것이다.
2003년 여름 폭염으로 15,000명의 국민을 잃은 프랑스 정부는 “Heat Can Kill and We Have Learned The Lessons”라는 구호를 내걸고 폭염에 대비해 국민행동지침을 마련하고 폭염 조기경보체계를 구축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시점이다.

글-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