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서 행복해요.”라는 카피가 있었다. 여성 소비자에 초점을 맞춘 가전제품의 광고로 기억한다. 남녀 평균 수명 비교에도 이 말이 들어맞는다. 거의 모든 사회 계층에서 남자는 여자보다 건강 수준이 낮고 일찍 죽는다. 2000년에 발표된 통계청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여자의 평균 수명은 79.5세이고 남자의 평균 수명은 72.1세로, 여자가 남자보다 7.4세 더 길다. 참고로 같은 해 미국인의 성별 평균 수명은 여자 79.5세, 남자 74.1세로 격차는 5.4세였다. 남녀의 사망률이 왜 다를까? 과학자들은 먼저 생물학적 원인에서 단서를 찾는다. 주요 사망요인인 심장질환 발생률이 남자보다 여자가 낮다. 여자에게 더 많은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이 심장병 예방 효과를 가졌기 때문으로 추측한다. 여자가 남자보다 더 강한 면역체계를 가졌다고 보기도 한다. 여자는 ‘가슴샘’에서 남자보다 더 많은 새로운 면역세포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국에서도 ‘감염성 및 기생충성 질환’으로 사망한 비율이 남자가 여자보다 두 배 가까이 높다. 그만큼 여자는 외부 병원균을 물리치는 힘이 강하다. 남성호르몬의 일종인 테스토스테론은 오히려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작용을 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거세된 남자의 수명이 더 길었다는 보고가 이를 뒷받침한다. 남자는 여자에 비해 태생적 결함을 갖고 태어날 위험이 높다. 남자 아기를 임신한 산모가 여자 아기를 임신한 산모에 비해 더 많이 먹는데, 만약 이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남자 아기는 태어날 때 ‘태생결함’이 나타날 가능성이 더 높고, 그 영향이 평생 지속될 수 있다는 보고도 있었다. 생물학적 요인 외에 사회적으로도 남자를 일찍 죽게 만드는 요소는 많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과거에 비해 지금은 남녀의 사회적 지위나 활동상황이 많이 바뀌었으므로 액면 그대로 동의하기 힘든 점이 많다. 그러나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던 오랜 세월 동안 굳어져버린 성역할이나 남녀의 성향 차이에 대한 일반론 또는 상황론을 언급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이해해주기를 바라면서 독자 여러분께 미리 양해를 구한다.) 남자는 여자보다 위험한 직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아서 작업 중 사고로 사망한 사람 중 90% 이상이 남자라고 한다. 열악한 작업 조건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숙면을 방해하여 육체적 활동을 위축시킨다. 과식하거나 술, 담배, 약물에 의존하게 만드는 행태 요인도 생명을 단축한다. 사회적 상황도 남자에게 불리하다. 여자보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적고, 다른 남자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에너지를 소모한다. 경쟁은 남자들에게 더 큰 위험을 감수하라고 부추긴다. 과학 기술의 혜택도 남자와 여자에게 다르게 적용되었다. 여자의 주요 사망원인이었던 분만 사망 사고는 의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자동차 제작 기술이 발전하여 더 빠른 자동차가 나오자 과속의 유혹에 빠져든 남자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할 확률은 높아졌다. 남자의 성향도 생명 단축에 일조한다. 남자들은 자신을 슈퍼맨과 동일시하려 한다. 자신에 대한 기대와 요구가 늘어날수록 피로감은 쌓이고 결국엔 각종 사고와 질병으로 이어진다. 남자는 병에 걸리기 쉽지만 병원에 가기는 싫어해서 의사를 만나는 빈도가 여자의 반도 되지 않는다. 그만큼 질병을 일찍 발견할 기회가 적어 병을 키우는 것이다. 그렇다고 남자가 여자보다 빨리 죽는 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엄격하게 건강한 생활을 실천하는 모르몬교 사제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남녀사제의 수명 차이는 불과 1세 미만이었다. 건강한 생활습관을 들이면 평균 수명 격차를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글-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