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침 전 컴퓨터 사용, 수면장애 유발

하루의 일과를 인터넷이나 비디오게임으로 마무리한 뒤 잠자리에 들었다가 잠이 잘 오지 않아 이리저리 뒤척여본 경험이 있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 인프라와 ‘1가구 1PC’ 과업을 달성한 우리나라에서 야간에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인구가 급증하면서 수면장애를 경험한 사람이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늦은 밤에 컴퓨터를 사용하고 난 후 잠을 청하면 잠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자들은 컴퓨터 모니터에서 발산되는 밝은 빛을 원인으로 꼽는다. 취침 및 기상 시간은 ‘송과선(pineal gland, 松果腺)’이라는 내분비기관에서 분비되는 밤의 호르몬 ‘멜라토닌(melatonin)’의 양과 밀접하게 관련 있다. 주변이 어두워지면 멜라토닌의 분비량이 늘어나면서 졸음이 온다. 체내 멜라토닌 양이 극에 달하는 시기는 새벽 1~2시경이다. 그런데 멜라토닌은 빛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멜라토닌이 한창 만들어져야 할 시간에 컴퓨터 모니터처럼 밝은 빛에 노출되면 멜라토닌 생산이 억제되어 잠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두 번째 요인으로 컴퓨터를 다루는 동안 정신적 상태가 고조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멜라토닌 수준은 감정상태에 영향을 받는다고 보고한 기존의 연구결과에 근거한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 위의 두 가지 가설을 모두 충족시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자정이 지난 늦은 밤까지 모니터를 쳐다보며 컴퓨터를 이용하는 20대 중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간의 생물학적 주기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멜라토닌 농도 및 직장(直腸) 온도, 정신적 활동의 강도를 대변하는 심장 박동수 등을 측정했다. 그 결과, 45룩스(lux) 조도의 모니터를 응시하며 신나는 게임을 즐긴 사람들은 15룩스의 어두운 모니터에서 지루한 덧셈뺄셈을 하던 사람들 보다 멜라토닌 농도는 낮고 직장온도와 심장 박동수는 높게 측정되었다.

이는 모니터의 밝은 빛과 신나는 게임을 하는 동안 고조된 감정 상태가 함께 작용하여 멜라토닌 분비가 억제되어서 몸 속 생물시계가 오작동해 정상적인 수면리듬을 방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야간근무를 자주하는 간호사들에게 각종 암 발생률이 높았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다. 동물실험에서 멜라토닌은 암 발생을 억제하는 작용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몇몇 연구들은 인간에게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연구진은 “야간 근무를 빈번히 하는 간호사들은 만성적으로 멜라토닌 부족현상을 겪게 되어 암 발생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러한 위험에 직면한 사람들은 섬유질과 엽산(folate)의 섭취를 늘리고, 운동량을 증가시켜 암 발생 가능성을 낮추라”는 조언을 곁들였다.

이 결과를 인용하여 취침시간대에 컴퓨터 사용이 늘어나면 멜라토닌 생산량에 이상이 생겨 암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직까지 이를 뒷받침 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컴퓨터와 같은 하이테크(high tech)로 인한 수면장애 현상을 완화할 수 있는 손쉬운 방안의 하나로 자기 전에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 마시는 것과 같은 로테크(low tech) 처방을 내놓았다.

글-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