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4의 비밀? 미신인가? 과학인가?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 <배스커빌의 개>에서 배스커빌 경은 깊은 밤 거대한 개의 추격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심장발작을 일으켜 사망한다. 여기서 나온 ‘배스커빌 효과(Baskerville effect)’는 심리적 스트레스 때문에 심혈관계가 변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다. 배스커빌 효과를 평소 불길하게 여기는 숫자가 심리적으로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주는가와 관련해 연구한 사례가 있어서 눈길을 끈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죽음을 의미하는 ‘사(死)’자와 발음이 흡사한 숫자 4를 불길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건물에 4층을 두지 않거나, 자동차 번호판 등에 4가 들어가는 것을 찜찜하게 여긴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중국과 일본 레스토랑의 전화번호 끝 네 자리 중에는 4가 들어간 경우가 매우 적었다고 한다. 이러한 문화적 인식이 과학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 대학의 연구진은 <영국 의학잡지> 2001년 12월호에 게재한 논문에서 중국인과 일본인이 4에 가지는 불편한 감정이 그들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1989년부터 1998년까지 미국에서 사망한 중국인과 일본인, 그리고 백인 미국인의 사망 자료를 비교 분석했다. 매달 4일에는 심장병으로 사망한 중국인과 일본인의 수가 다른 날보다 유의하게 많았다. 특히 만성 심장질환으로 사망한 건수는 13%나 많았다. 중국인과 일본인이 많이 사는 캘리포니아주의 자료만 보면 같은 질환으로 사망한 사람이 27%나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심장병 외에 다른 질환으로 사망한 건수는 특별히 증가하지 않았다. 백인 미국인들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 결과에 대해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연구진은 4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한 심리적 스트레스가 매달 4일에 더 많은 사망자를 배출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배스커빌 효과’가 입증된 실험이었다.

그러나 1년 뒤, <영국의학잡지>에 이를 반박하는 논문이 게재되었다. 캘리포니아 포모나 대학의 경제학과 교수인 게리 스미스는 2001년 연구에서 사용한 자료에 그 이후의 자료를 추가하여 분석한 결과 ‘4일 심장병 사망자 증가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그는 결론에서 2001년 연구는 방법에서 몇 가지 결함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인과 중국인이 숫자 4를 싫어하듯 미국인 역시 숫자 13을 싫어하는데 미국인은 13일에 특별히 사망자가 증가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그리고 2001년 연구는 소설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이후 게리 스미스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는 연구 결과가 한 차례 더 발표되었다. 2003년 12월 초 홍콩 중국대학교의 파네사 교수는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사망한 광둥어를 사용하는 홍콩 거주 중국인의 자료를 이용하여 스미스 교수와 동일한 분석을 실시했다. 연구 결과 마찬가지로 숫자 4가 들어간 날의 심장병 사망자는 중국인들이 행운의 숫자라고 여기는 3일, 8일과 비교하여 큰 차이가 없었다.

결국 숫자 4는 꺼리는 숫자일 수는 있지만, 심리적으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주지는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적 차이를 과학으로 풀어보려는 서양 과학자들의 시도가 자못 흥미롭다.

글/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