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오염이 인간의 생식 능력에 이상을 초래하는가?” 이는 그간 과학자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된 논쟁거리 중 하나다.
기존 연구에서는 DBCP(1,2-Dibromo-3-chloropropane), 살충제, 유기용제, 중금속(특히 납과 카드뮴) 등 특정 물질에 고농도로 노출된 남성은 수정능력이 저하되고, 고환 기능장애 및 생식기 기형, 웅성(雄性) 저하, 성 행태 변화 등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최근에는 디젤매연에 노출된 실험용 쥐가 성 호르몬 분비 이상을 일으켰다는 동물실험 결과도 뒤따랐다.
일반인이 생활하는 환경오염 수준에서도 생식능력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확신한 증거가 부족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번에 이탈리아 나폴리 대학의 연구진이 ‘일반 대기오염 수준에서도 남성 정자의 질이 저하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Human Reproduction』 제18호;1055-1061쪽, 2003년)
연구진은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하루 6시간씩 근무하는 남성(평균 연령 37세. 23세~62세)과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동일 연령대의 일반 남성 각각 8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건강상태, 대기오염도, 혈중 호르몬 수준, 정액특성 등을 조사했다. 직업적으로 고농도의 자동차 배기가스에 노출된 그룹과 거주지역의 일상적인 대기오염에 노출된 그룹 간에는 어떤 차이를 보였을까?
연구 결과 정자 수와 남성 호르몬 수준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으나, 정자의 운동력에서는 톨게이트 근무 남성들이 그렇지 않은 남성들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두 그룹은 결혼 비율과 자녀 수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으나, 배우자가 첫 번째 임신을 하기 까지 걸린 기간이 톨게이트 근무자가 평균 15개월, 일반 남성이 평균 8.1개월이 걸렸다. 톨게이트 근무자의 자녀 수는 평균 1.8명이었고, 9.9%는 자녀가 없었던 데 비해, 일반 남성의 자녀 수는 평균 2.0명이고 자녀가 없는 사람은 1.6%에 그쳤다.
이 연구의 가장 큰 관심사인 대기오염 농도 비교에서는 예상대로 톨게이트 주변의 대기 오염농도가 4가지 물질(질소산화물NOx, 황산화물SOx, 일산화탄소CO, 납Pb) 모두 거주지보다 높았다. 이를 반영하듯 톨게이트 근무자의 혈중 납 농도도 일반 남성보다 높게 나타났다. 혈중 납 농도는 남성의 생식능력과 관련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혈중 납 농도가 높을수록 정자 수가 감소하고, 사정 시 정액 방출량이 적으며, 정자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정자의 모양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설상가상으로 체내에 침입한 납 성분은 쉽게 밖으로 배출되지 않고, 고환과 같은 남성의 생식기관에 축적되는 경향이 있다. 이번 연구에서도 혈중 납 농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정자수가 적은 경향을 보였다.
질소산화물에 노출된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MHb(멭헤모글로빈)’의 혈중 농도도 톨게이트 근무자가 높았으며, 정자 운동능력 역시 일반 남성에 비해 떨어졌다. 정자의 운동성은 정자의 수와 함께 남성의 수정능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정자의 운동성 저하는 궁극적으로 배우자의 임신 가능성 저하를 의미한다(일반적으로 앉아서 일하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 정자의 운동성이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연구에서는 두 그룹 모두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이 문제는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없다).
이 같은 결과가 나타난 이유 중 하나는 톨게이트 근무자들이 일하는 동안 자동차 배기가스에 포함된 고농도의 질소산화물, 이산화황, 일산화탄소, 납 등에 노출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기존의 연구 결과를 고려할 때 특히 질소산화물과 납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 여겨진다.
물론 이 연구 결과에만 의존해서 자동차 배기가스를 남성불임의 주범으로 몰아 세울 수는 없다. 영국 셰필드 대학의 무어 교수는 “도시 남성과 농촌 남성의 수정능력을 비교한 결과 큰 차이가 없었다”는 연구 사례를 들면서 “배기가스가 남성의 수정능력을 떨어뜨리려면 매우 고농도여야 할 것”이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존의 개별 물질에 대한 독성학(毒性學)적 연구와 이번 연구의 결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자동차 배기가스와 정자의 질 저하 사이에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자동차 배기가스가 대기오염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우리 나라 대도시에서 사는 남성이라면 불안해하지 않을 수 없다. 승용차의 등록대수가 천만을 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창문을 닫은 채 운전하게 된 지는 벌써 오래되었다. 불임부부의 약 3분의 1은 ‘남편 탓’이라는 의학통계도 나와 있다.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우리의 현실은 오히려 국민의 건강을 해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몇 년 안에 우리 나라에서도 디젤 승용차가 대중화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부는 기존의 환경기준을 낮추면서까지 디젤승용차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디젤자동차는 정자의 운동력을 저하시키는 원인의 하나로 지목된 질소산화물을 가솔린자동차에 비해서 월등히 많이 배출한다. 언제까지 성장논리에 밀려 본인과 가족, 국민 전체의 건강이 희생되어야 하는지 끝이 보이지 않아 답답할 따름이다.
글-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한국 환경건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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