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 머물면서 한국사람으로는 처음 마시기 시작했다는 커피. 불과 백여 년 만에 커피는 대중적인 기호식품으로 자리잡았다. 커피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이 커피 특유의 맛과 향을 예찬하지만, ‘카페인’의 오묘한 작용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으로 꼽힌다. 아직 몸 속에 남은 졸린 기운을 카페인 성분으로 날려보내려는 듯 하루 일과를 커피와 함께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고, 카페인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다며 저녁에는 한사코 커피를 사양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커피 속 카페인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카페인의 실체를 파악하려면 ‘아데노신(adenosine)’이라는 화학물질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아데노신은 체내에서 심장기능의 속도 조절, 혈관 팽창, 그리고 수면작용을 돕는 반면, 카페인은 이런 작용을 사사건건 방해한다. 커피를 자주 마시면 심장 박동수가 증가하고 혈압이 높아지며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장기간 다량의 커피를 마시면 뼈가 약해져 넘어졌을 때 골절 위험도 높아진다. 카페인은 신장의 기능을 활성화하여 이뇨작용을 촉진하는 물질이다. 그러므로 땀을 많이 흘린 뒤에는 카페인이 함유된 음료수를 마시지 말아야 한다. 카페인의 탈수작용으로 인해 갈증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카페인의 이뇨작용과 관련해서 재미있는 연구결과도 있다. 일과시간 중에 커피를 많이 마시는 사람들은 자연히 화장실을 자주 드나들게 되므로 궁극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자신이 이런 부류에 속하는 사람은 아닌 지 카페인 섭취 스타일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커피에만 카페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각종 차, 초콜릿, 음료수, 의약품 등에도 카페인이 들어 있다. 최근에 시판되는 음료수 중에는 카페인 함유량이 콜라보다 훨씬 많은 것들도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이를 모르는 어린이들이 카페인이 든 음료수를 과도하게 마셔 수면부족 현상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잠을 제대로 못 잔 어린이는 다음 날 수업에 집중할 수 없게 되고, 주의가 산만해져 사고가 일어나는 등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외국에서는 실제로 이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적당량만 마시면 문제될 게 없지 않느냐 항변할 사람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커피를 적당히 마시는 경우에도 ‘유해한’ 콜레스테롤의 양을 증가시킨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된 적이 있다.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는 반대결과도 만만치 않았지만, 이와 관련하여 전문가들은 커피(카페인) 자체보다는 커피를 어떻게 마시느냐가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기존 연구를 요약한 자료에 따르면, 종이 필터로 거른 커피는 콜레스테롤 증가와 무관했지만 필터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끊여 먹으면 걸러지지 않은 지방성분 때문에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진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커피 애호가들을 기쁘게 하는 연구결과도 여럿 있다. 하루에 커피를 2~3잔 정도 마신 사람들이 오히려 신장결석 위험이 줄어들었다는 연구나, 하루에 3잔 정도 커피를 마신 사람들이 간경변증으로 사망할 위험이 최고 40%까지 줄었다는 노르웨이 과학자들의 보고가 그러하다. 지금까지 수행된 연구를 종합하면, 커피가 심장질환을 비롯하여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식품인지 분명히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암 발생과의 관련성은 더욱 불확실하다.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도 커피를 ‘일반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식품’으로 규정해 놓았다.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카페인은 습관성 중독제로 분류되지 않는다. 19세기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인 랄프 왈도 에머슨이 ‘커피는 단지 희석된 물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일갈한 것이 영 틀리지는 않았다. 전문가들은 불안, 초조, 불면증, 부정맥, 심장의 두근거림, 속 쓰림 등의 증세가 있다면 카페인 섭취를 줄이라고 권한다. 특히 임산부는 일반인보다 커피 섭취를 자제하라고 충고한다. 임산부가 커피를 하루에 4~5잔 이상 마시면 유산할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몇 번 보고되었기 때문이다. 커피를 즐겨 마시는 사람에게 갑자기 ‘뚝’ 끊으라고 종용하는 것도 썩 바람직하지는 않다. ‘두통’과 같은 금단현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디카페인’ 커피의 비중을 높이거나 레몬즙을 디카페인 커피에 섞어 마시면서 점차 주스 따위로 바꿔가는 편이 훨씬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솔벤트 같은 화학약품을 사용해서 카페인을 제거했지만 요즘 나오는 디카페인 커피는 물을 사용하므로 걱정 없다. 어림잡아 2~3주 동안 10%씩 카페인 섭취량을 줄인다고 생각하고 실천하면 무난하다. ‘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옛말은 커피에도 잘 들어맞는다. 적당히 마시면 삶에 향기와 윤기를 불어넣는 묘약이 되지만 과하면 건강을 해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커피다. 글-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