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병 예방에서 우울증 완화까지, 생선이 몸에 좋은 이유

그린란드의 에스키모 이누이트(Inuit)는 다른 유럽 사람들보다 류머티스관절염, 당뇨병, 심장질환 등에 덜 걸린다고 한다. 원인이 무엇일까 궁금해 하던 과학자들은 이들이 고래, 바다표범, 연어 같은 생선을 많이 먹는다는 점과 여기에는 공통적으로 ‘오메가-3-지방산(omega-3-fatty acids)’이라는 ‘생선지방’이 풍부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후로 생선지방의 효능에 대한 연구가 쏟아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를 살펴보면 생선을 자주 먹는 사람들은 뇌혈관이 막혀 뇌로 들어가는 혈액공급이 중단되어 발생하는 ‘허혈성 뇌졸중(Ischemic stroke)’을 비롯 ‘관상동맥심질환(coronary heart disease)’, ‘부정맥(arrhythmia)’ 등에 걸릴 위험이 현저히 줄어든다고 한다. 생선지방이 혈관에 쌓인 지방 찌꺼기를 녹여 혈액의 흐름을 원활하게 조절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으로 추측하고 있다. ‘중풍’이라고 더 많이 알려진 ‘뇌졸중’은 2001년에 우리 나라에서 단일 질병 사망원인으로는 1위를 차지한 질병이다.

최근에는 심장질환뿐만 아니라 정신분열증, 조울증, 우울증, 치매 등 정신질환 증세를 개선하는 효과도 있다는 보고도 많이 나왔다. 자살 기도 후 병원에 입원한 사람 5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혈중 생선지방의 농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자살 의지가 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연구진은 “생선지방의 섭취가 늘어나면서 뇌조직에 있는 ‘세로토닌(serotonin)’의 기능이 활성화되어 우울 증세가 개선된 것이 자살 욕구를 감소시켰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세로토닌’은 뇌에서 감정조절 기능을 담당하는 화학물질로, 양이 적어지면 일부 사람들은 우울증이 나타날 위험이 높아진다고 알려져 있다. 이 결과를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면, 생선이 우울증 환자의 천연 ‘자살 방지제’로 사용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생선지방은 ‘경계성 인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라는 정신질환에도 효능을 보였다. 이것은 정서 및 행동, 대인관계가 매우 불안정하고 변동이 심한 이상 성격으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선상에 있는 인격장애이며, 현재 이 병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약은 없다. 그런데 2003년 초 《미국 정신의학회지》에 발표된 연구에서 새로운 대안이 떠올랐다. 연구진은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8주 동안 한 쪽에는 매일 생선지방 캡슐을, 나머지 한 쪽에는 생선지방 성분이 없는 ‘가짜 약(placebo)’을 투여하는 임상실험을 했다. 그 결과, 매일 생선지방 캡슐을 먹은 그룹은 증세가 현저하게 개선되었다고 한다. 정신병 치료제로 사용되는 약이 대개 부작용이 심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렇다 할 부작용 없이 치료 효과를 보인 생선지방에 학계의 시선이 집중되는 건 당연하다.

일주일에 적어도 한번 이상 생선을 섭취한 노인들에게 ‘치매’ 증세가 적게 나타났다는 보고도 있다. 생선지방이 뇌에 염증이 생기는 것을 막아주고, 뇌의 발달과 뇌 신경세포의 재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또한 임신 전후에 생선을 많이 섭취한 산모도 ‘출산후우울증(postpartum depression)’이 적게 나타났다고 한다.

지난 세기 동안 서구인의 식습관이 변해서 생선 섭취가 크게 줄어 들었는데, 반대로 우울증 환자의 수는 급격히 늘었으며, 생선 소비가 많은 국가에는 우울증 환자도 더 적다고 한다. 모두 생선지방이 정신질환에 효능이 있다는 증거가 될 만하다.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에서는 생선지방의 효과가 가장 널리 알려진 ‘관상동맥심질환’과의 관계에 대해서 ‘확정적’이란 말 대신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미국 뇌졸중협회의 이오인 레더핸 박사는 “생선지방의 효능에 대해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얼마나 많이 그리고 어떤 형태로 먹어야 할지 결론을 내리는 일만 남았다. 건강한 사람들도 평소에 생선을 섭취해서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을 예방하기 바란다”고 권고했다.

다만 생선 섭취와 관련해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환경오염 때문에 생선에서 ‘수은’ 성분이 검출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태아는 아주 적은 양의 수은으로도 피해를 입을 수 있으므로 임산부의 경우 ‘생물농축’ 현상으로 상대적으로 고농도의 수은이 함유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는 덩치 큰 생선(상어, 참치, 황새치 등)은 되도록 먹지 않는 게 좋다. 또한 생선을 너무 많이 먹으면 혈관 내에서 정상적인 ‘혈전(피떡)’의 작용을 방해하여 ‘과출혈’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보고도 있으므로 적당히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선지방이 많이 함유된 것으로는 청어, 고등어, 정어리, 참치, 송어 등이 있다. 영국의 심장병 협회는 일주일에 두 토막 이상의 생선을 섭취하라는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생선을 섭취해 얻는 이익이 예상되는 피해를 훨씬 능가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믿고 생선을 자주 먹는 습관을 들여도 좋을 것이다.

글-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