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 메스꺼움, 가슴통증, 저림, 안면홍조, 졸음, 무력감, 식은 땀, 안면근육 경직, 입 주위 무감각, 심장박동 빨라짐, 괴상한 꿈꾸기 등의 증세가 나타날 수 있으므로 과다섭취를 금하라.” 이것은 의약품 포장지에 씌어진 경고문이 아니다. 1995년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이 화학조미료의 일종인 ‘MSG(monosodium glutamate)’ 섭취 후에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위의 증세들은 미국에 있는 중국식당에서 음식을 먹은 후에 많이 나타난다고 하여 일명 ‘중국음식점증후군’이라고도 한다. 1909년 일본의 이케다 기쿠나에 박사는 다시마를 삶은 국물에 사람이 느끼는 기본적인 4가지 맛(단맛·신맛·쓴맛·짠맛)외에 ‘감칠맛’이라는 제5의 맛이 존재하고, 이 맛이 아미노산의 일종인 ‘글루탐산나트륨염’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MSG란 다시마 국물의 감칠맛을 인공적으로 합성해낸 것으로 1909년부터 ‘아지노모토’라는 상품명으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화학조미료에 MSG가 들어 있으며, 국물을 우려낼 때 멸치나 다시마를 사용하던 주부들은 MSG의 등장으로 요리가 한결 간편해졌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식품의 포장에는 MSG란 용어 대신 ‘엘-글루타민산나트륨’으로 표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흰색 결정체인 MSG는 매우 신비로운 물질이다. 그 자체는 이렇다 할 맛이 없지만, 음식에 곁들여지면 요리 재료의 고유한 맛을 강하게 해주어 맛을 더욱 깊고 풍부하게 만든다. 2002년 뉴질랜드 오타고 대학 연구진은 실험대상자들에게 MSG가 들어간 음식과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여러 차례 제공한 뒤 맛을 평가하도록 했다. 음식에 대한 선호도, 맛의 풍부함, 짠맛 등에서 모두 MSG가 들어간 쪽이 높은 평가를 얻었다. 이런 결과는 MSG 첨가 여부를 사전에 알려준 경우에도 동일하게 나타났고, 앞으로도 MSG가 들어간 음식을 먹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았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노인층일수록 MSG 농도가 높은 음식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고,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 MSG가 많이 들어간 음식을 좋아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MSG를 먹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MSG가 들어간 음식과 들어가지 않은 음식의 맛에 서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한번이라도 MSG를 먹어본 사람들은 대부분 그 후에 MSG가 들어간 음식을 더 맛있게 느낀다는 점이다. 1968년 권위 있는 의학잡지인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에 MSG의 유해성에 대한 논란이 처음으로 제기된 뒤 지난 30년 동안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동양의 맛 MSG를 경험한 미국인들 중에 중국음식점증후군을 호소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5년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축적된 연구 결과를 근거로 MSG를 ‘일반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성분’으로 분류했다. MSG에 의한 부작용은 일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증후군’일 뿐 ‘질병’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이유였다. 그렇다고 MSG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는 건 아니다. 신생아용 음식에는 MSG를 첨가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전문가들은 천식, 고혈압, 울혈성심부전 환자, 우울증약 복용자, 알레르기 민감자는 예방 차원에서 MSG 섭취를 제한할 것을 권고한다. 피천득 시인은 ‘맛은 그 때뿐이다’라고 했다. 우리는 MSG가 주는 순간의 행복과 발생 가능한 부작용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글-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