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람들은 만찬을 즐기며 치즈와 버터 등을 즐겨 먹는 식습관을 가졌지만 심장병 발생률이 낮다. 그 원인은 그들이 즐겨 마시는 적포도주 때문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적포도주가 다른 술보다 특별히 어떤 기능이 뛰어나기 때문일까? 적포도주에는 항산화 기능을 가진 ‘폴리페놀(polyphenol)류’가 포함되어 있고, 폴리페놀류 중 하나인 ‘레스베라트롤(resveratrol)’에는 항암 작용과 심장병 예방 효과가 있다. 최근에 미국 하버드 의대 연구진은 레스베라트롤이 누룩과 인간 세포의 수명을 연장한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적포도주에 들어 있는 레스베라트롤과 그 외 다른 항산화 요소가 심장병이나 암을 예방하는지 규명하기에는 너무 적은 양이어서 효과를 확실히 말하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다만 미국에서 의료계에 종사하는 남성 38,077명을 대상으로 12년 동안 추적한 연구에 따르면 ‘심장병 예방 효과는 술의 종류가 아니라 양에 좌우된다’고 한다. 맥주를 마시건 포도주(적포도주, 백포도주)를 마시건 간에 하루 한두 잔의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심근경색 발생률이 30~40% 낮았다. 하버드 보건대학원의 에릭 림(Eric Rimm) 박사도 기존에 발표한 25건의 연구 결과를 검토한 후, ‘술의 종류에 관계없이 적당한 양만 마신다면 심장병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여성이나 동양인에게도 해당된다. 일본 오사카 의학연구소가 오사카 지방에 거주하는 40~59세 직장인 8,476명을 8년여 동안 조사해 보니, 하루 한두 번 음주한 사람이 술을 전혀 마시지 않은 사람보다 심장병 발생률이 45% 낮았다. 중국 상하이의 중년 남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적당한 음주는 ‘허혈성 심장 질환(Ischemic Heart Disease)’으로 사망할 위험을 낮춘다는 결과를 얻었다. 알코올이 심장 질환을 예방한다는 것은 동물실험과 임상실험으로도 증명되었다. 알코올은 좋은 콜레스테롤(High Density Lipoprotein Cholesterol)의 수치를 높이고, 항응고 작용을 하며, 당뇨병의 원인이 되는 인슐린 감성 지수를 낮추는 역할을 한다. 적당한 양의 음주는 인종과 성별에 상관없이 심장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적당한 알코올 섭취량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남자의 경우 알코올 30g, 여성은 15g 정도가 적정 음주량에 속한다. 이것을 한 번의 음주량으로 환산하면, 남자는 맥주 2캔, 소주 2~3잔 또는 와인 2잔 정도, 여자는 맥주 1캔, 소주 1~2잔 또는 와인 1잔 정도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은 더 적은 양을 마셔야 한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몸집이 작아 체내에 들어온 알코올을 희석할 수 있는 체액이 적으므로 같은 양을 마시더라도 간에 더 큰 부담이 간다.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남성보다 심장 질환 발생률은 낮지만, 알코올 섭취로 인한 유방암 발생 위험은 높으므로 남성보다 적게 마시는 것이 좋다. 적당량이라도 음주가 누구에게나 유익하지는 않다. 술은 간 질환을 비롯하여 출혈성 뇌졸중, 고혈압, 후두암, 식도암, 유방암, 대장암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임산부가 술을 마시면 신생아가 신체장애나 정신장애를 앓게 되는 ‘태아알코올증후군(fetal-alcohol syndrome)’이 나타날 수 있다. 적은 양이라도 유방암이나 대장암의 발생 위험을 높일 수 있으므로 가족 내에 암 병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특히 조심해야 한다.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경우가 아니라면 적절한 수준의 음주가 심장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정설로 인정할 만하다. 포도주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술도 심장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미 ‘술 권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심장병 예방을 위해 적당한 음주를 하십시오’라고 권하기는 어렵다. 폭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적당한 음주가 심장병을 예방한다는 사실을 자신의 음주습관을 합리화하는 데 악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튼튼한 심장을 가지려면 운동과 건강한 식단이 더 효과적이다. 글-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