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 안전과 환경에선 낙제점

세계적으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port Utility Vehicle)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주5일 근무제가 확대 실시되면서 늘어난 여가시간을 좀 더 멋지게 보내고 일상적인 쓰임새도 극대화하려는 소비자들이 고성능에 세련된 디자인까지 갖춘 SUV를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덩치 큰 SUV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며 걱정되는 점이 여럿 있다.

SUV는 일반 세단 승용차에 비해 연비가 낮아 결과적으로 대기오염 물질을 더 많이 배출하고, 경유를 사용하는 비율이 높아 인체 발암물질로 알려진 디젤매연을 많이 배출한다. 게다가 SUV에 의한 교통사고 사망자 및 중상자의 비율이 전통적인 세단형 승용차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연구 결과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미국 메릴랜드 대학 연구진은 1995년에서 1999년 사이 메릴랜드 주에서 일어난 보행자 교통사고를 조사해 분석한 결과, 보행자 사망률이 차종에 따라 현저히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Accident Analysis & Prevention, 제36(1)호)

전체 사망건수 중 SUV에 의한 보행자 사망률은 세단형 자동차에 비해 72%나 높게 나타났다. 보행자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히는 비율도 세단형 자동차에 비해 SUV가 48% 높았다. 시속 48킬로미터 이상의 고속 충돌사고에서는 SUV와 일반 승용차가 별 차이가 없었지만 그 이하의 속도에서는 보행자와 충돌할 경우 머리, 가슴, 복부, 척추 등 생명과 직결된 부위에 부상을 입히는 비율이 SUV가 2배나 높았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은 보행자에게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다. 최근에 발표된 미국 고속도로안전관리국(NHTSA)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형 SUV는 전복사고를 당할 확률이 승용차에 비해 9배나 높고, 전복사고가 났을 경우 탑승자의 사망률도 훨씬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막연히 큰 차를 타니까 안전할 거라 생각해선 안 된다는 경고로 받아들여도 좋다.

연구진은 SUV가 보행자에게 이렇게 치명적인 이유로 세단형 승용차에 비해 차체가 더 크고 무거우며 차량 앞부분이 높다는 점을 들었다. 일반 승용차의 경우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차 앞부분의 쏠림 현상이 나타나면서 보행자의 하반신과 부딪히지만, SUV는 앞 부분이 높기 때문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상반신과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기존의 연구들도 일제히 큰 차에 치인 보행자일수록 더욱 심각한 부상과 높은 사망률을 보였다는 결과를 내놓고 있다.

우리나라의 보행자는 운전자로부터 충분히 보호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02년 우리 나라에서 보행자 사고의 비율은 전체 교통사고 건수의 44.3%를 차지해 미국의 14.1%, 프랑스의 12.5%에 비해 3배 정도 높게 나타났다. 보행자 사고의 원인 중 54.2%(2001년 통계)는 운전자 부주의였다고 한다. 자동차 1만 대당 사망자수는 화물차 6.8명, 승합차 7.0명으로 승용차 3.3명보다 2배 가량 높았다.

유난히 큰 차를 좋아하는 우리 나라 소비자의 성향과 현재와 같은 기름값 체계가 지속되는 한 SUV 수요는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한 문제점으로는 다음의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이번 연구 결과에서 보듯 SUV로 인한 보행자의 피해가 더욱 커질 것이다. SUV는 크기가 작은 다른 차량과 충돌사고를 일으켰을 때는 전복사고가 아닌 경우 SUV 탑승자의 피해가 적은 장점이 있다. SUV의 이런 장점을 최대한 살리되 보행자의 피해를 줄일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SUV 운전자에 대한 특별교육과 함께 차 앞부분 디자인을 개선하는 등이 대안으로 떠오른다.

경유를 사용하는 SUV가 계속 늘어나고, 구입한 지 몇 년 뒤에 차가 낡으면 대기오염이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디젤 엔진은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알려진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대신 질소산화물(NOx)과 미세분진(PM)의 배출량은 월등히 많다. 질소산화물은 각종 호흡기질환을 일으키는 오존의 전구물질(precursor)이고, 디젤의 미세분진은 이미 인체발암물질로 밝혀졌다. 미국의 환경부는 2004부터 경유차에 대한 환경기준을 더욱 강화한 새로운 환경기준(TIER-2)을 실시하고 있다. 우리 나라 환경부가 디젤 승용차에 대한 기준을 느슨하게 풀어주며 디젤차 보급에 부추기는 것과는 정반대의 정책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2002년 우리나라의 자동차 1만 대당 사망자수는 2001년의 5.5명에서 4.5명으로 줄어 처음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교통사고 1위의 국가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환영할 만한 소식이다. 그러나 이에 만족하지 말고 정부는 차종 변화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해 보행자와 탑승자 모두 안전해지고 환경오염까지 줄이는 정책을 세워나가야 한다.

글-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