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비행기 여행을 위해 알아두면 좋을 몇 가지

목적지에 곧 도착한다는 기내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승객들은 바퀴가 활주로에 닿는 순간을 기다리며 약간은 긴장되고 약간은 들뜬 마음으로 도착 직전의 정적을 즐기고 있다. 그러나 고요함도 잠시뿐, 여기저기서 적막을 깨는 아기 울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비행기 여행을 하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인간의 신체부위 중 ‘귀’는 기압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비행기가 지상으로 내려오면서 기압이 높아져, 공기로 차 있던 귀 속의 중이 부분은 쪼그라든다. 이 때문에 착륙하는 동안 승객들은 귀가 먹먹해지고 심하면 통증까지도 느낀다. 어른들은 껌 씹기, 침 삼키기, 하품하기, 좌우 턱 운동 등으로 이런 이상상태를 해결할 수 있지만, 아기들은 그렇지 못하므로 자신의 고통을 울음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럴 때는 아기를 재우지 말고 젖을 물리거나 물을 먹이는 게 좋다.

비행기가 날아가는 상공의 물리적 환경은 지상의 환경과는 차이가 크다. 상공은 기압이 낮고 산소가 부족하며, 기온도 영하 수십 도를 넘나든다. 비록 압력문을 비롯한 첨단장비들이 기체 밖의 무시무시한 환경으로부터 승객들을 보호하지만, 한계는 있다.

비행기의 고도가 높아지면 산소분압이 떨어져서 기내의 산소 양은 지상에 있을 때보다 줄어든다. 이는 건강한 사람들에겐 피로감이나 집중력 감소를 유발하는 수준이지만, 심장질환이나 폐질환을 앓는 사람들은 산소 흡입량이 줄어들어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급격한 기류 변화 때문에 비행기가 상하좌우로 요동치면 멀미증세가 일어나기도 한다. 이 경우엔 좌석을 뒤로 젖히고 머리를 머리 받침대에 꼭 붙인 채 눈을 감으면 증세가 완화된다.

백여 명이 함께 호흡하는 비좁은 기내의 공기에는 문제가 없을까? 현대의 항공기는 기내 공기의 50%는 재순환을 하고 나머지 50%는 신선한 외부 공기로부터 조달한다. 재활용 되는 공기도 고도의 정밀여과과정을 거치므로 기내 공기에 대해 특별히 염려할 필요는 없다. 기내에는 에어컨디셔너와 환기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박테리아나 곰팡이 관리도 잘 되는 편이다. 실제로 몇몇 연구에 따르면, 기내의 박테리아와 곰팡이 농도는 지상의 거주지역이나 쇼핑센터, 다른 교통수단에서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다만 외부 공기가 기내로 공급되기 전에 데워지기 때문에 습도가 5~25% 정도에 지나지 않아 기내 공기는 매우 건조하다.

이렇듯 항공기 내부의 환경은 탑승객이 가장 쾌적한 상태로 여행할 수 있도록 갖가지 첨단 장비들로 세심하게 조절되고 있지만, 기내 환경에 대해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다. 1994년 미국 질병관리센터(CDC)가 밝혀낸 바에 따르면, 기내에서는 결핵처럼 공기를 통해 전파될 수 있는 질병이 발생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승객이 탑승을 완료한 시점에서 출발이 지연될 경우에는 더욱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1977년 알래스카 행 비행기에 오른 한 여성이 탑승 후 15분이 지났을 무렵 급성 호흡기질환 증세를 나타냈다. 그런데 비행기는 기계 결함 때문에 승객을 태운 채 3시간 동안 지상에 발이 묶여 있었다. 나중에 추적 조사한 결과, 같은 비행기에 탑승한 승객과 승무원 53명 중 38명이 독감에 걸린 것으로 판명되었다. 지상에 머무르는 동안 기내 환기시설은 작동되지 않았고, 내부의 공기는 건조했다. 이런 상황은 독감을 유발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전파되기에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이 사건 이후, 세계보건기구는 출발이 30분 이상 지연될 때는 지상에서도 환기시설을 가동하도록 항공사에 요구하고 있다.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SARS) 감염자가 비행기에 탑승했을 경우 다른 사람에게 쉽게 그것을 전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고한 최근의 한 연구도 기내 환경의 취약함을 드러낸 또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연구에서 사스 감염자와 같은 줄이나 앞쪽 세 줄에 앉아 있던 승객들이 뒷줄이나 다른 곳에 있던 승객들보다 3배 이상 많이 감염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사스 바이러스가 공기를 통해 전파되는 게 아니라 감염자의 침과 같은 분비물과 직접 접촉해서 전파됨을 암시한다. 연구진은 기내에서 기침이나 재채기가 나오면 허공에 분비물이 튀지 않도록 휴지 등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만약 손으로 가렸을 때는 기내의 다른 물건을 만지기 전에 비누와 물로 손을 깨끗이 닦으라고 조언한다.

촘촘히 박혀 있는 좁은 좌석은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이라 불리는 ‘정맥혈전증(DVT)’의 발생 위험을 높이는 원인으로 의심 받고 있다. 정맥혈전증이란 피 흐름이 느린 다리나 허벅지의 정맥에 혈액 응고물이 생기는 현상으로, 이 ‘피떡’의 일부가 혈류를 타고 폐로 들어가면 ‘폐혈전색전증’을 일으켜 호흡곤란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정맥혈전증은 이코노미클래스뿐만 아니라 일등석이나 비즈니스클래스에서도 발생하며, 자동차나 극장, 심지어 일터에서도 발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DVT는 오랫동안 다리를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는 상황이 문제일뿐 꼭 비행기 탓은 아니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심혈관질환자, 암 환자, 최근에 수술을 받았거나 다리나 복부에 상처를 입었던 사람, 임산부, 혈전증에 대한 가족력이 있는 사람, 피임약을 포함한 여성 호르몬제를 복용하고 있는 사람, 비만인 사람, 흡연자 등은 비행기 여행 중에 DVT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수시로 스트레칭이나 다리 주무르기, 기내 산책 등을 하라고 충고한다. 탈수를 촉진하여 피를 진하게 하는 커피나 알코올 대신 물을 많이 마시는 것도 DVT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비행기를 타고 여러 시간대(time zone)를 지나게 되면 인간의 24시간 생활리듬은 틀어지게 마련이다. 체내의 생물학적 시계가 오작동을 일으키면서 시차적응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외국의 유명 프로축구팀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일시적으로 귀국해서 국내 경기에 임할 때, 평상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도 시차 부적응 때문으로 여겨진다. 경기가 열리기 1~2일 전에 급히 귀국했으므로 시차에서 오는 피로감 및 집중력 저하현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동쪽으로의 여행이 서쪽으로의 여행보다 훨씬 힘들다. 서쪽으로 여행할 경우에는 하루가 길어지므로 더 빨리 시차적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여행을 하건 현지 시각에 빨리 적응하는 게 중요하다. 현지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이라면 카페인이 함유된 음료를 마셔 머리를 맑게 하고, 밤 시간이라면 수면에 도움을 주는 멜라토닌을 복용하는 것도 시차적응을 앞당길 수 있는 방법이다.

2001년 미국에서 발생한 9.11 테러사건은 비행기 여행에 또 다른 스트레스를 안겨주고 있다. 9.11 사건 이후 국제선에 오르는 여행객들은 최소 2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해서 보안검사와 탑승절차를 마쳐야 한다. 과거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볼펜이나 손톱깎이 등도 무기로 사용될 수 있는 소지품으로 간주되어 모두 압수당한다. 심지어 카메라 삼각대도 기내 손가방에 넣고 탈 수 없게 되었다. 신발도 벗어 보여야 한다. 보안요원에게 의심이라도 받게 되면 따로 불려 나와 정밀검색을 받아야 한다. 승객들은 이런 과정에서 정신적 스트레스를 느끼기 때문에 기내에 자리 잡은 후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알코올을 찾기도 한다. 항공업계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과음으로 인해 기내에서 소란을 피우는 승객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관계자들은 이런 불상사가 엄격해진 비행기 탑승절차와 무관하지 않다고 봤다.

비행기 여행에는 각종 질병이 전파될 수 있는 위험과 수많은 스트레스 요인이 존재하지만, 비행기가 주는 편리함에 비할 바는 못 된다. 건강한 비행기 여행을 위해 탑승자와 항공사의 노력이 어우러져야 한다. 반가운 통계도 한 가지 있다. 기내에 전문 의료인이 탑승할 확률은 국내선은 30%, 국제선은 80% 이상이라고 한다. 만약 기내에서 응급상황이 발생할 경우엔 그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을 것이다.

글-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