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네 아이들에게 ‘아토피’는 남의 일

아토피성 피부염으로 밤낮 고생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눈물짓는 부모들이 많다. 병원균이 살지 못하도록 깨끗한 환경을 만들고 아이도 깨끗하게 씻기고 돌보느라 애쓰지만, 오히려 청결한 환경이 아토피를 부추길 수도 있다. 형제도 많고 지저분한 주거 환경을 가진 흥부네 아이들은 아토피성 피부염이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형제효과(sibling effect)’에 기대어 추론해 낸 얘기지만 현대 보건학자들은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형제 많은 집 안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각종 알레르기 질환에 걸릴 위험이 낮다는 ‘형제효과’를 입증하는 연구 결과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아토피성 피부염을 비롯하여 건초열(꽃가루 때문에 발생하는 알레르기성 비염), 기관지 천식 등과 같은 알레르기 질환을 앓는 인구가 많아졌다. 특히 어린이 환자의 증가 속도가 빨라서 과거 100명 중 1명 정도에 불과했던 이 질환이 선진국의 경우 20%에 육박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알레르기는 화학약품, 의약품, 음식, 환경 오염, 생활 습관, 스트레스, 자연 환경 등의 다양한 발병 원인을 지닌 질환이다. 아토피가 ‘기묘하다’ 또는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뜻을 지닌 말이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원인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 추측한다.

다만 대부분의 질병과 마찬가지로 알레르기 질환도 유전적 요인이 관여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부모 중 어느 한쪽이 알레르기 질환을 갖고 있으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자녀에게 나타날 위험이 훨씬 크다. 만약 부모가 모두 알레르기 질환을 앓고 있다면 자녀가 걸릴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최근에는 알레르기 질환이 부모의 병력과 무관하게 외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어린이 아토피 질환을 일으키는 다양한 원인 중에는 생후 2년 이내에 항생제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가도 포함된다. 그런 경험이 있는 아기들은 앞으로 아토피 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다. 전 세계적으로 항생제 남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유아 시절 투여한 항생제가 아토피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보고는 새겨들어야 한다. 임신 전 피임약을 복용했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어린이들이 아토피 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연구도 있다. 호르몬도 아토피 질환에 영향을 준다는 얘기다.

아토피 질환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지 않는 사항이 ‘환경오염’ 문제다. 아토피가 오염된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농업에 종사하는 부모를 둔 어린이들이 아토피 질환 발생률이 낮다거나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성인들이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고생할 확률이 낮다는 연구들이 모두 아토피 질환에 환경오염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다. 실제로 대기 오염이 심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박테리아가 생산하는 독소에 노출되면 인간의 면역반응이 더욱 민감하게 일어난다.

이렇게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하는 아토피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 중인데 학자들은 ‘형제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2002년 미국 미시간 주립 대학교 역학(疫學)과 연구진은 ‘형제효과’가 아토피 질환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1965년부터 2000년 사이에 발표되었던 53개 논문 중 48개의 논문에서 형제효과가 아토피 질환에 예방주사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형제가 많은 가정에서 자라난 어린이들이 알레르기 질환에 덜 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몇몇 가설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가설은 ‘위생가설(hygiene theory)’이다. 어릴 때 너무 청결한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전염성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에 노출될 기회가 적다. 지나치게 깨끗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나중에는 사소한 먼지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알레르기 체질로 바뀐다. 위생적인 생활환경이 질병을 예방하기는 하지만, 인간을 연약하게 만들 수도 있다. 적당히 병원체에 노출되는 환경에서 병원체와 빈번하게 접촉하며 면역력을 키워야 한다. 알레르기 질환이 가난한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위생 관념이 철저하고 소득과 교육 수준이 높은 서구 선진국에서 더 많이 발생하는 현상도 위생가설을 뒷받침한다.

형제가 많으면 공동으로 사용해야 하는 물건도 늘어나고 청결해지기 힘들고 아무래도 주거 환경의 질은 떨어지기 쉽다. 형제들 사이에서는 서로 질병을 주고 받아 교차 감염도 자주 일어난다. 그러나 비슷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형제들이 주고 받는 질병들은 치명적인 피해를 가져오기보다는 뚜렷한 증세를 야기하지 않고 소멸할 가능성이 높다. 형제들은 평소 서로의 면역체계를 단련시키는 좋은 스파링 파트너가 되는 셈이다.

또한 형제가 많은 어린이들은 형제가 적은 어린이들보다 폐활량이 더 큰 경향이 있다. 형제가 많으면 같이 뛰어 놀 기회가 많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운동량이 늘어 폐뿐만 아니라 면역력을 증강시키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쌍둥이들이 천식으로 입원하는 비율이 낮다는 사실도 형제효과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형제가 없거나 적은 아이들이 탁아 시설과 같은 공동 육아 시설을 이용할 때에도 형제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학자들 사이에서도 아직 의견이 분분하지만, 일부 연구에서는 생후 초기에 탁아 시설에 맡겨진 경험이 있는 아기들은 아토피 질환과 관련하여 형제효과의 덕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공동시설에서 발생하는 감염 기회의 증가가 전적으로 아토피 질환을 예방하지는 않는다.

알레르기 질환 중에서도 천식은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생후 1년 이전에 탁아소에 맡겨졌던 아이들에게 천식 증세가 나타날 위험이 높다. 이는 단순히 감염 기회가 증가한다고 형제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형제효과를 누리기 위해 다양한 건강 상태에 있는 아기들이 모인 탁아시설을 이용한다면, 혹을 떼러 갔다가 붙여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생후 초기에 개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과 접촉했던 아기들도 나중에 알레르기 질환에 걸리게 될 위험이 낮다는 보고가 있다. 그러나 아기가 아주 어렸을 때 애완동물과 접촉해야 하고, 그 이후에는 애완동물이 오히려 알레르기 질환 관리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특히 천식을 앓았던 부모를 둔 자녀들은 이미 유전적으로 천식이 나타날 위험이 높은 상태에 있으므로 애완동물을 키우지 말아야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위생 상태는 안 좋았고 형제들이 많았던 예전에는 드물었던 알레르기 질환이 깨끗한 주거 환경과 단출한 형제를 가진 요즘에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너무 깨끗한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 청결한 환경보다는 다양한 알레르기 인자들을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많은 형제와 어울려 지내는 어린이가 면역력이 강하고 알레르기 질환에도 잘 걸리지 않는다. 그만큼 알레르기 질환에 형제효과가 미치는 영향력은 크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이러한 형제효과가 어떻게 알레르기 질환 예방에 기여하는지를 생물학적으로 명확하게 밝히는 일이다. 전문가들은 만약 형제효과의 실체가 규명되어 이를 예방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면 현재 만연하는 아토피 질환의 30%는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글-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