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단지 신체적 질병만 아니다

최근 세계 보건 기구(WHO)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여 년간 전세계 비만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다고 한다. 2002년을 기준으로 미국 전체 인구의 60% 이상이 ‘과체중(overweight)’이며, 26%가 비만(obesity)에 해당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앞으로도 지속된다면 수십 년 내에 미국 사람들 모두가 ‘뚱뚱해’질 것이라는 경고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 보고서를 통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이 같은 현상이 비단 서방 선진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포함한 세계 각국으로 빠르게 확산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패스트푸드에 무방비로 노출된 유·청소년들에게는 더욱 가공할 만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2003년 5월 29일부터 6월 1일까지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렸던 제12차 유럽 비만학술 대회에서는 비만을 인류를 위협하는 ‘전세계적 전염병(global epidemic)’으로 규정할 만큼 그 심각성은 날로 더해가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얼마 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발표에 따르면, 식생활이 서구화 되면서 20~40대 연령층에서 비만으로 병원을 찾은 건수가 2년만에 30배 이상 늘어나는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고 한다.

비만을 과학적으로 정의하자면, 자신의 체중(kg)을 키의 제곱(m2)으로 나눈 ‘신체질량지수(body mass index, BMI)’가 30 이상인 경우(과체중은 25~29.9)를 말한다. 질병을 예측하는데 있어서 이 지수가 체중보다 좀 더 정확한 지표로 여겨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가 성별에 관계없이 권장하는 범위는 BMI 20~22 정도이다. 이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의 평균 사망률과 유병률(有病率)이 가장 낮게 나타났다는 여러 연구 결과에 근거한 것이다.

비만을 일으키는 요인은 매우 다양하다. 이 가운데 비만을 개개인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고유한 특성에서 기인한다고 보고, 비만을 유발하는 유전 인자를 찾고자 하는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환경적 인자, 특히 ‘사회경제적’ 요소를 배제하고서는 뚜렷하고 신뢰할만한 결과를 얻기는 어려울 듯싶다.

비약적인 경제성장과 기술개발을 통한 후기산업사회로의 이행은 인간으로 하여금 ‘앉아서’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과거 농업 및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는 육체노동 자체만으로 충분한 운동량이 확보되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비용’으로 여가시간 일부를 할애해야만 적절한 운동량을 유지할 수 있다.

절대적인 운동부족, 소모된 칼로리보다 음식물을 통해 상대적으로 많이 섭취된 칼로리 때문에 현대인이 비만에 시달리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며, 이러한 생활패턴과 이에 따르는 비만이 흡연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인간의 조기사망을 초래한다는 미국의 한 연구결과는 결코 그네들만의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한국, 일본, 대만을 비롯하여, 중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타이, 필리핀 등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최근 잇따라 보고된 자료에 따르면, 특히 이들 국가의 대도시에서도 비만문제의 해결이 보건당국의 심각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들에게 외식산업의 발달, 특히 값싸고 편리한 패스트푸드의 급속한 확산과 더불어 자동차 등 운송수단에 대한 강한 의존현상은 운동부족을 유발하여 비만을 촉발시켰다는 최근의 연구결과도 한몫을 거든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증가하고 실질임금의 꾸준한 상승이 결국 가정에서 음식의 조리, 섭취, 그리고 이와 관련된 일련의 행위에 대한 ‘비싼’ 기회비용을 유발하게 됨에 따라,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시간절약 효과가 큰 ‘외식’을 빈번하게 선택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해 아이들의 식단에도 ‘정크푸드(패스트푸드의 별칭. 쓰레기음식)’가 자주 등장하게 되었고, 이렇게 영양가는 낮고 칼로리만 높은 정크푸드는 평균 TV 시청 및 비디오 게임시간의 증가와 더불어 ‘소아비만’의 주범으로 자리잡았다.

최근 들어 각종 매체를 통해 보도된 바대로, 비만 및 과체중은 고혈압, 당뇨, 심장혈관계 질환, 각종 담낭질환, 근골질환 및 관절염, 호흡기 질환, 심지어 자궁내막암, 유방암, 결장암, 전립선암 등을 직·간접적으로 유발하는 요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비만이 불러오는 문제는 신체적 건강을 위협하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비만은 당사자의 정신적 건강도 침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각종 연구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비만 어린이의 ‘삶의 질’은 육체적, 심리적, 사회적, 학교 활동의 모든 면에서 볼 때 동일 연령대의 ‘암환자’와 비슷한 정도라는 충격적인 보고가 있었다. 비만인 어린이는 동료로부터 받는 놀림과 따돌림 등으로 인해 ‘반항성 도전장애(oppositional defiant disorder)’라는 정신질환의 발생률이 2배 이상 높았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또한, 비만인 사람들은 불안 및 우울증 증세가 나타날 위험도 더 높다고 한다. 대인관계 및 사회생활에서 뚱뚱하다는 이유로 보이지 않는 소외나 차별을 인식하게 되는 경우, 자신감 및 자존감(self-esteem)의 저하는 간혹 과다한 음식섭취(폭식)으로 이어져 더더욱 비만하게 만든다는 연구도 있다. 비만이 사람을 정신적으로까지 아프게 만드는 것이다.

비만 여아일수록 ‘초경’ 시기도 빨라진다고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여성호르몬에 폭로되는 기간을 늘려 유방암 및 난소암 발생위험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여러 질병의 유발뿐만 아니라, 비만이 불러오는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뭇 복잡하고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일례로, 2002년 여름 미국의 한 항공사가 과체중 혹은 비만인 탑승객에 대해 두 개의 좌석에 해당하는 요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하자 이에 대한 찬반 논의가 뜨거웠던 적이 있다. 뚱뚱한 몸매 때문에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은 명백한 차별적 행위라는 견해와, 비만은 개인의 생활패턴으로부터 선택된 결과라는 논리가 그 이유이다. 또한, 미국의 한 소비자가 특정 패스트푸드 업체를 상대로 “단골 고객이었던 나를 뚱뚱하게 만든 것에 대해 보상하라”는 소송을 낸 적이 있는데, 재판부는 원고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판매자보다 소비자의 행동에 책임을 물은 것이다.

비만하면 직업을 구하는 데 혹은 승진에 있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제약이나 불이익이 따를 수 있고, 결혼을 위해 배우자를 구하는 데도 쉽지 않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특히 남성보다는 비만 여성이 받는 사회 경제적 영향은 더욱 심각하다. 우리 사회가 여성에 대한 모순된 ‘이중적 잣대’를 적용하는 탓도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여성이 외모 이외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남성에 비해 약한 것도 한 이유이다. 이런 근거로 여태껏 다이어트 산업이 여성 위주로 각광받은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할 수 있다.

비만 예방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한 운동과 올바른 식습관이다. 비만을 치료하기 위한 약도 개발되어 있지만, 어디까지나 보조 수단에 불과하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 ‘모유수유’에 대한 열풍이 불고 있는 데, 어린이의 비만 예방차원에서도 바람직한 현상이다. 엄마 젖을 먹고 자란 아기가 나중에 뚱뚱해질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 때문이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아침식사를 하는 사람이 비만에 걸릴 위험이 낮다고 한다. 또한, 우유나 치즈 등의 유제품을 통해 충분한 칼슘을 섭취하는 어린이가 복부지방이 더 적다는 재미있는 사례도 보고된 적이 있다. 복부 주변에 살찐 사람은 당뇨병 발생 위험이 더 높다는 연구에서 보듯 복부지방은 다른 곳보다 더 유해한 존재로 알려져 있다.

오는 9월 7일부터 9일까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는 ‘제 2차 아시아-오세아니아 비만에 관한 총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비만이 전세계를 위협하는 질병으로 규정된 만큼, 운동과 식이요법 등을 통한 개개인의 노력과 아울러 정부 및 지역사회 차원의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함은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을 것 같다. 비만은 무시해 버리기에는 너무나 심각해져 버린 국민 건강의 문제가 되었다.

글-조창익(한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