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에서 전체 자동차 등록대수가 천만 대를 넘은 것은 바로 엊그제 일이었다. 그런데, 2003년에 들어 ‘승용차’만으로도 천만 대를 돌파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소득수준의 증가와 이를 추월하는 ‘마이카’에 대한 열망이 빚어낸 결과다. 자동차 생산량도 세계 5위 안에 들 만큼 이제 명실상부한 자동차 대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이로운 성공담을 접하면서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 ‘질적 성장’이 ‘양적 성장’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질적 성장의 핵심은 ‘환경 친화도’의 달성 정도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환경 친화도는 연료의 효율성과 오염물질의 배출량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환경 친화도=기술수준’이라는 등식을 설정해도 큰 무리가 없을 듯싶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연료비와 점점 엄격해지는 배출허용 기준 모두를 만족시킬 묘수는 ‘기술’ 외에는 없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미국 환경부에서 매년 발표하는 시판 자동차의 ‘환경친화도 성적표 (Green Vehicle Guide)’를 보면 우리 나라의 자동차 들은 대부분 중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자동차가 내뿜는 대표적인 독성물질은 일산화탄소(CO), 탄화수소(HC), 질소산화물(NOx), 미세분진(PM) 등이다. 대기오염 물질로 인식되지는 않지만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CO2)도 다량 방출한다. 이 점에서 앞으로 시판될 디젤(경유) 승용차는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가솔린 차에 비해 CO2 배출량은 적지만, NOx와 PM는 월등히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의 환경부는 디젤매연을 잠재적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더욱 엄격해진 배출허용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통상마찰을 이유로 허용기준을 완화시키면서까지 디젤차의 보급을 서두르는 악수(惡手)를 두고 있다. 철저하게 국민의 건강피해를 도외시 하는 처사다. 우리 나라 소비자의 자동차에 대한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경차에 대한 홀대는 여전하다. 출퇴근과 레저 용도가 자동차 구입의 주요 동기이면서, 그 필요성이 크지 않은 4륜 구동 및 높은 마력을 지닌 차량에 대한 수요도 꾸준하다. 이 모두 우리의 도로사정과 어울리지 않는, 대기오염을 악화시키는 소비 패턴이다. 연비가 낮고 더 많은 대기오염물질을 방출하기 때문이다. 자동차 배기가스는 인간에게서 알레르기 질환을 유발하고, 남성의 정자의 양과 질을 저하시켜 생식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자동차의 배기가스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노약자와 어린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자동차 정책은 환경정책과 연계하여 실시해야 한다. 환경을 오염시키고 건강피해를 가중시키는 차량에 대한 적절한 대가를 치루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글-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