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홍콩에서는 정체불명의 독감이 유행했다. 이 독감 바이러스는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던 18명 중 6명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이에 의구심을 갖고 몰려든 각국의 과학자들은 이 병원체가 그 동안 새에게서나 발견되던 인간에게는 낯선 ‘조류독감(bird flu)’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홍콩에서는 신선함을 위해 즉석에서 닭을 도살하여 판매하는 관행이 남아있는데, 이 과정에서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파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래서, 홍콩 당국은 예방차원에서 홍콩 시에서 사육되던 모든 닭, 오리, 거위 등을 도살하는 조처를 취했다. 올해 4월 네덜란드에서도 조류 독감이 유행하여 80여명이 감염되었고, 이 중 한 명이 사망했다. 홍콩의 경우와 다른 점은 감염자 가운데 일부는 조류가 아닌 인간과의 접촉을 통해서 2차 감염이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그 후 네덜란드의 조류 독감은 인근 벨기에까지 침범하여 수천 마리의 새들을 감염시켰고, 벨기에 정부는 이를 비둘기의 소행으로 간주하고 대중 스포츠인 비둘기 경주를 금지시킨 바 있다. 현재 과학자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인간이 조류 독감 바이러스와 인간에게 만연하는 독감 바이러스에 동시에 감염되는 경우이다. 최악의 경우 두 바이러스가 인체 내에서 서로 섞이게 되는 ‘스와핑’ 현상이 일어나 새로운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탄생하고, 이것이 기존의 독감 바이러스처럼 인간사이에서 쉽게 전파되는 시나리오도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그 당시 네덜란드의 과학자들은 닭과의 접촉이 빈번한 사람들은 예방차원에서 반드시 독감 바이러스를 맞으라고 권고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바이러스 학자인 로버트 웹스터 박사는 “1997년 홍콩의 조류독감 바이러스의 출현은 ‘생물학적 대재앙’의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지금까지 지구상에 출현했던 모든 독감 바이러스의 유전자들은 고스란히 조류 생물에게 보존되어 있고, 앞으로 이들은 진화를 거듭하면서 인간을 비롯한 다른 종(種)에게 전파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1918년 전 세계에서 2천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배출한 ‘스페인 독감(the Spanish Flu)’의 재출현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 1997년 홍콩에서 발생한 것과 같은 종류의 조류 독감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이 바이러스가 인간에게까지 전파된 흔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경험에 비춰볼 때 인간에게 전파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으므로 이에 대비해야 한다. 더욱이, 시기적으로 볼 때 독감이 유행하고 있는 요즘에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출현했다는 사실은 여러 모로 불리하다. 조류 독감 바이러스에 사람이 감염되면 독감에 걸렸을 때와 유사한 증세가 나타난다. 어떤 사람들은 유행성 결막염과 같은 ‘충혈된 눈(pinkeye)’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감염자 식별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정보이다. 예방을 위해서는 조류와의 접촉을 피하고, 이미 나와있는 독감 예방을 위한 기본적인 위생 수칙들을 준수해야 한다. 또한, 인간 독감 바이러스와 동시에 감염되는 경우에 대비하여, 연령에 구애 받지 말고 누구나 독감 백신을 맞아 두는 것이 좋다. 처음 맞이하는 이번 조류독감에 대해 다른 나라의 사례를 철저히 학습하여 지금 초기 단계에서부터 가능한 모든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올해 12월에도 홍콩에서 조류 독감 환자가 발생했으나, 이번에는 무사히 넘겼던 그들의 ‘노하우’를 배워야 한다. 글-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