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 먹은 가축이 인간의 항생제 내성 키운다

기존의 항생제로는 치료가 안 되는 질병이 늘어나고 있다. 항생제 내성은 그 동안 인류가 질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항생제를 남용한 결과다. 우리도 예전에는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가면 항생제가 섞인 약을 받아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박테리아를 죽이는 데 써야 할 항생제가 바이러스 질환인 감기 치료에 처방되는 데도 말이다.

최근의 여러 연구는 직접 항생제를 복용하지 않아도 대기나 토양 등 자연환경을 통해 항생제에 노출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보고하고 있다. 특히 축산업 종사자가 그러하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가축에게 발생하는 질병을 예방 또는 치료하고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항생제가 사료에 첨가되었다. 이는 미국과 유럽연합을 포함하여 전세계 대부분의 축산농가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왔다. 그런데 이것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했다.

독일의 하노버 수의과대학 연구진은 1981년부터 2000년까지 20년간 매년 돼지를 사육하는 농가를 방문하여 우리 안에 있는 먼지를 수집, 분석했다. 일반적으로 가축 우리 안의 먼지에는 인간에게 호흡기 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각종 세균과 독소가 함유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분석 결과 그 속에는 세균과 독소뿐만 아니라 항생제도 5가지나 들어 있었다. 항생제 먼지는 대부분 사료에 항생제 가루를 섞는 과정이나 항생제를 투여 받은 가축의 배설물이 마르면서 그 속에 있던 항생제 성분이 먼지 형태로 공기 중에 섞였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축사 안의 먼지가 과거와 현재에 사용된 가축용 의약품 내역을 고스란히 담은 처방전인 셈이다.

검출된 항생제 중에서 ‘타이로신’과 ‘설파메타진’은 사람에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그래서 1998년에 유럽연합은 가축 사료에 이 물질의 첨가하지 못하도록 했다. 함께 검출된 항생제 ‘클로로암페니콜’은 재생불량성 빈혈을 일으키며 아기, 특히 신생아의 세균성 감염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될 경우 ‘그레이 베이비 신드롬’을 유발하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클로로암페니콜은 DNA를 손상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미국식량농업국(FAO)과 세계보건기구(WHO)의 경고에 따라 1994년부터 유럽의 농가에서는 사용이 완전히 금지되었다.

더욱 놀라운 건 가축이 살고 있는 주변의 토양과 강, 지하수에서도 아주 적은 양이지만 항생제 성분이 검출되었다는 사실이다. 가축에게 준 항생제가 인간은 물론 자연 생태계에까지 침투했음을 암시한다.

이 연구 결과에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바로 축산업 종사자들이었다. 만성적으로 고농도의 항생제 분진에 노출되면 약이나 주사로 항생제를 투여 받았을 때와 같은 정도의 알레르기 증상과 항생제 내성이 생길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가축에게 투여된 항생제뿐만 아니라 인간이 섭취한 항생제도 배설물 처리 과정에서 일부가 자연에 침투하여 항생제 내성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는 가설이 제기되었다. 일부 항생제는 분해되지 않고 토양에 계속 남아 축적되고 있다는 증거도 나왔다. 항생제가 새로운 환경오염물질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가축 우리 안의 공기 중 항생제 농도는 습한 여름보다는 건조한 겨울에 더 높은 경향이 있다. 일을 하는 동안에는 호흡량이 늘어나 더 많은 항생제 먼지를 마시게 된다. 이번 연구의 대상이었던 돼지 농가보다 닭 사육 농가에서는 더 많은 항생제 먼지가 발견된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에서 작업할 때는 반드시 고성능 마스크를 써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되도록 축산농가에서 항생제 사용을 줄이는 것이다.

글-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