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과 청소년 흡연률

지난 2003년 보건복지부 장관이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 다녀온 뒤, 국산 담배 가격을 3,000원 이상으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 190여 개 국가와 함께 ‘담배규제기본협약(Framework Convention on Tobacco Control)’에 가입한 후 내려진 첫 번째 조치다. 이로써 금연 분위기가 확산되고 앞으로 전개될 담배정책도 가늠이 된다.

흡연자 중 상당수가 언젠가는 담배를 끊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을 만큼 흡연자 스스로도 담배의 유해성을 잘 알고 있다. 여러 모로 흡연은 주변 사람은 물론 자신도 인정하는 ‘해악’이지만 여전히 흡연자들은 흡연권과 행복추구권을 내세워 혐연권과 건강권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흡연이 주는 악영향이 심각하게 인식되면서 점차 흡연자들이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공간은 줄고 있다.
담배에는 폐암 등을 유발하는 발암 물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일례로 소각로에서 소각할 때 발생하는 ‘다이옥신’이라는 발암 물질은 소각로 인근 주민이 일상적으로 흡입하는 양보다 담배 한 개비를 피울 때 들이마시는 양이 훨씬 많다고 한다.

발암물질은 유해성의 정도에 따라 등급이 매겨져 있는데, 미국 국립환경보건연구소(NIEHS)의 분류에 따르면 담배는 벤젠, 석면처럼 소수의 ‘확인된’ 발암 물질에 속한다. 여기서 ‘확인된’이란 말의 의미는 발암성을 입증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감자튀김에서 검출되어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아크릴아마이드’,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PAHs’, 목재 방부제로 쓰이는 ‘포름알데히드’, 다이옥신의 일종인 ‘퓨란’, 농약 등에 포함된 ‘PCB’ 등은 모두 발암물질로 분류되지만, 담배보다 그 정도가 한 단계 낮은 발암물질에 속한다. 이 단계는 동물 실험에서는 명백하게 암을 유발한다는 증거를 보였지만, 인간에서는 아직 확실히 증명되지 않은 단계다.

이렇게 인간에게 치명적인 흡연이 더 고약한 것은 담배가 흡연자 자신의 건강만 해치는데 그치지 않고 주변 사람에게도 영향력을 미친다는 데 있다. 미국 텍사스주에서만 매년 3천여 명이 간접 흡연으로 조기(早期) 사망 한다고 한다. 흡연하는 부모를 둔 어린이가 감기 및 천식에 더 많이 걸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임신부가 흡연하면 태아의 성장 호르몬 생산이 감소해, 작은 뇌를 가진 아기를 출산할 위험이 높아지고 아기의 지능이 떨어질 수 있다. 게다가 간접 흡연의 피해는 우리가 흔히 예상하는 것처럼 호흡기 질환만 유발하지 않는다. 담배에 자주 노출된 어린이의 충치 발생률이 20% 이상 높았다는 연구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쯤 되면 담배는 개인의 ‘기호품’이 아니라 ‘공공의 적’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하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금연 구역의 범위를 공공장소는 물론이고 술집이나 레스토랑으로 확대하고 법적 제재를 가하고 있다.

흡연은 건강에만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분야에도 영향력을 미친다. 질병 발생과 생명 단축을 초래하여 결과적으로는 막대한 의료비 지출과 노동 생산성 감소를 부추기고 있다. 1999년에 미국에서 흡연과 관련되어 지출된 비용은 담배 한 갑당 평균 의료 비용 3.45달러, 노동 생산성 손실 3.73달러로, 3~5달러 하는 담배 한 갑을 피울 때 7.18달러의 직·간접 비용이 발생했다.

흡연의 부정적인 효과가 이처럼 분명하지만 애연가들은 담뱃값 인상이 단순히 세수입 증대를 위해 흡연자의 호주머니를 털어가는 불합리한 결정이라는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물론 흡연자 입장에서는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부담에 직면하게 될 터이니 그럴 만도 하다. 청소년들은 담뱃값이 인상되면 빠듯한 호주머니 사정 때문에 가장 큰 타격을 입고 탄력적으로 대응할 것이다. 이것이 정부가 노리는 긍정적인 결과다.

미국의 질병관리센터(CDC)가 발행한 ‘질병 및 사망 보고서’에서 담뱃값이 인상된 후 미국 청소년의 흡연률이 대폭 떨어졌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1995년 36%에 이르던 고교생 흡연률이 2001년에는 25%로 줄었다고 한다. 같은 기간 동안 담배 가격은 한 갑 당 평균 1.77달러에서 3.53달러로 인상되었다. 지속적인 금연 캠페인도 흡연률 감소에 기여했겠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원인은 가격 인상이었을 것으로 연구진은 분석했다. 법적 흡연 연령을 높이는 방법보다 담배 가격을 인상하는 방법이 더 효과적이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편 우리나라가 가입한 ‘담배규제기본협약’은 선언적 성격이 짙었던 기존의 건강 관련 협약과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이번 협약은 회원국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협약의 의무 사항을 준수해야 하는 구속력을 지니고 있다. 준수 사항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담배에 대한 광고 및 판촉 활동을 규제하고, 담배에 부과되는 세율을 높게 책정하여 흡연에 입문하려는 청소년의 의지를 꺾을 수 있는 정책을 펴도록 장려한다. 경고 문구가 담뱃갑의 30% 이상 차지하도록 크게 하고, 덜 해롭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할 우려가 있는 ‘라이트(light)’나 ‘마일드(mild)’란 용어를 담배 이름에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이렇게 전례에 없던 강한 협약을 만들어 낸 이유는 더 이상 흡연으로 인한 피해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담배회사의 압력에 굴복하여 담배 판매 규제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던 미국 정부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협약에 가입했다. 이 협약이 발효되면 미국 내의 판매 부진을 후진국과 개발 도상 국가에서 만회해 나가던 미국 담배 회사의 앞날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질 것이다.

흡연을 배척하는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우리나라도 담뱃값을 인상하기로 했지만 문제는 국산 담뱃값을 인상함으로써 국내 담배 재배농가가 입게 될 경제적 피해다. 국산 담뱃값만 인상하면 양담배 점유율이 증가하는 뜻밖의 결과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또한 국산 담배 소득이 저조하면 지방세 수입이 감소하고 물가 인상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을 사전에 강구해야 한다.

이종욱 박사가 ‘WHO’라는 거대 국제 기구의 차기 사무총장에 당선되었다. 이번 담뱃값 인상이 우리나라를 흡연률 선두 국가의 불명예에서 끌어내고, WHO를 이끌어 갈 수장을 배출한 건강한 국가로 거듭나는 긍정적인 결과로 매듭지어지기를 바란다.

글-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