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전통적 기준으로는 병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갖가지 병으로 시달리고 있다. 뚜렷한 원인을 찾을 수 없고 증세도 다양해서 의학적으로 실체를 규명하기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병은 ‘질병’ 대신 ‘증후군(syndrome)’이라 불린다. 최근에 부쩍 자주 언급되는 ‘빌딩 증후군(sick building syndrome, SBS)’도 이 부류다. SBS란 건물 안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겪게 된 ‘두통, 피로감, 집중력 저하, 졸음, 눈코목의 자극, 가벼운 기침, 가려움, 현기증, 메스꺼움’ 등과 같은 증세를 통틀어 가리킨다. 이 증세는 대개 건물 밖으로 나오면 사라지는 일시적 현상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증세가 오래 지속되며 구조적 질병으로 발전하여 병원신세를 지기도 한다. 1984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새로 지었거나 단장한 빌딩의 30%는 SBS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빌딩증후군이 왜 일어나는 지는 분명하지 않다. 가장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원인은 ‘실내 흡연’이다. 쾌적한 실내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건축설계, 각종 사무기기에서 나오는 전자파, 목재나 카펫, 벽지 등의 건축자재,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 체취처럼 거주자 자신이 배출하는 오염물질, 환기구와 에어컨 등에 기생하는 생물체인 박테리아, 바이러스, 곰팡이, 향수나 방향제, 접착제 등의 기타 화학물질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결정적으로 이런 오염물질을 바깥으로 제대로 배출하지 못하는 ‘불량한 환기시설’을 공범으로 지목할 수 있다. 특히 에어컨디셔너가 설치된 건물에서 SBS가 나타날 위험이 높다. 냉각수 등에서 발견되는 ‘레지오넬라’ 같은 세균은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호흡기질환을 일으킨다. 1998년 덴마크의 과학자들은 가장 흔한 사무기기인 ‘복사기’가 SBS를 일으키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했다. 실험용 쥐 여러 마리를 복사기를 사용하는 일반 사무실과 유사한 환경에 노출시켰더니, 1시간 후에 호흡률이 30%나 줄어드는 것이 관찰되었다. 복사기에서 방출되는 ‘오존’이 이미 실내에 존재하는 다른 화학물질과 반응하여 호흡기에 염증을 일으킬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결과다. 일반적으로 쥐가 인간보다 대기오염물질에 덜 민감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인간이 받는 피해가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간다. 빌딩 증후군을 예방할 방법은 없을까?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은 환기를 자주 하는 것이다. 대기 순환이 잘 되지 않는 실내 공기는 바깥 공기보다 5배 이상 혼탁하다. 2년 전 미국 하버드 보건대학원 연구팀은 신선한 바깥공기가 잘 공급되는 환경에서 일하는 근무자일수록 질병으로 결근하는 비율이 낮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훌륭한 환기시설을 갖춘 회사일수록 작업 능률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많다. 벤자민(Weeping Fig)이나 피스릴리(Peace Lily) 같은 식물을 실내에 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 식물은 발암물질로 여겨지는 ‘휘발성유기물질(VOCs)’의 실내농도를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SBS가 심리적 요인과도 관련이 있으므로 식물이 만들어내는 청량한 분위기가 근무자에게 유무형의 이익을 줄 것이다. 글-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한국 환경건강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