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바닥은 과일향 세제로 말끔히 청소돼 있다. 다른 직원의 향수와 화장품 냄새도 풍긴다. 문 쪽으로는 담배 냄새가 조금씩 들어온다. 복사기와 프린터는 쉴 새 없이 돌아간다. 난방 때문에 창문은 잘 열 수 없다. 오후가 되면서 눈과 목은 건조하고 따끔거린다. 가슴은 답답하고 숨쉬기가 편치 않으며 머리가 아프기도 하다. 마른 기침을 할 때도 있다.’ 하루 종일 실내에서 일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겪는 일이다. 이를 ‘병든건물증후군’(Sick Building Syndrome)이라고 부른다. 요즘 복사기와 프린터는 사무실 필수품이다. 복사와 출력을 하는 동안에는 오존을 비롯해 여러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이 생긴다. 이처럼 복사기와 프린터에서 직접 나오는 오염물질도 해롭지만, 이들이 공기에 있는 수백 가지의 화학물질과 반응해 생긴 2차 오염물질도 문제다. 휘발성 유기화합물은 토너 가루와 복사지가 열을 받아 생기거나 가구, 청소용 세제, 화장품 등에 의해서도 생긴다. 코펜하겐 국립산업보건연구소는 1999년 복사기에서 나오는 오존이 공기에 있는 다른 화학물질과 반응해 눈과 호흡기를 자극하는 물질을 만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실험으로 12마리의 쥐를 오존과 화학물질의 혼합물에 노출시켰다. 한 시간 뒤 쥐들의 호흡 기능은 30%나 줄었고, 호흡기에는 염증이 생겼다. 쥐를 오존과 개별 화학물질에 각각 노출시켰을 경우에는 피해가 줄었다. 쥐는 공기오염물질에 사람보다 덜 민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연구팀은 쥐에서 나타난 호흡량 감소를 사람에게 적용하면 병든건물증후군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일상적인 실내 환경에서는 오존 및 휘발성 유기화합물의 농도가 낮아 질병이나 불편함을 일으킬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복사기와 프린터 사용이 늘면 오존과 휘발성 유기화합물의 농도가 높아져 병든건물증후군을 일으킬 수 있다. 복사기와 프린터 때문에 생기는 병든건물증후군을 예방하려면 오존이 덜 나오는 복사기와 프린터를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사용횟수도 줄여야 한다. 아울러 복사기와 프린터가 있는 실내를 청소할 때는 향기 나는 세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특히 레몬향의 세제와 방향제는 더욱 해롭다. 다른 종류보다 훨씬 많은 화학물질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담배연기도 오존과 결합할 수 있기 때문에 실내 금연은 기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환기를 자주 하는 것이다. 복사기와 프린터를 별도의 공간에 설치하는 것도 한 대안이 될 수 있다. 글-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한국 환경건강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