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데서 사는 고단함에 대하여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 했던가. 모처럼 화창한 봄날이었던 지난 일요일, 느닷없이 지진이 밀어닥쳤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발생한 강진의 여파였다. 남아시아 대지진의 쓰나미 공포가 한반도에 재현될까봐 온 나라가 바짝 긴장했지만 다행히 최악은 면했다.

실내, 특히 고층건물 안에 있었던 사람들에겐 충격의 강도가 만만찮았을 것이다. 23층 높이의 아파트가 갑자기 휘청하는 느낌이 들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는 경남 양산의 시민, 식탁에 둘러앉아 밥 먹는데 심한 흔들림이 느껴져 한동안 현기증이 가시질 않더라는 서울 길동의 18층 아파트 주민, 지진 충격으로 엘리베이터가 고장나 30분간 갇혀 있었다는 부산시민 4명 등등 요 며칠 신문에 소개된 꽤 많은 사례들이 증거다.

칠레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진지대로 꼽히는 일본이 지척인지라 우리나라도 결코 지진으로부터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마땅한 대비책을 강구하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한국은 유래 없이 초고속으로 도시화가 진행되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도시는 나날이 좁아지고 자꾸 위로만 치솟는다. 도시에 산다는 것, 특히 고층건물에 산다는 건 꼭 지진이 아니라도 여러모로 쉽지 않다. 건강하게 사람답게 살기란 더욱 어렵다.

자연광선에 적절히 노출되고, 자연환기도 잘 되고, 야외 녹지공간과 가까운 건축이 건강에 가장 좋은 건축이라는 점에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없다. 도심의 빌딩숲은 이런 요소들과는 정확히 정반대 요소들로만 채워져 있다.

도시환경과 건강문제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우려의 시선을 던진다. 과밀화에 따른 심각한 환경오염과 소음공해 등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건물의 고층화도 건강을 해치는 원인이 된다.

고층건물의 높은 층에 살면 아무래도 밖에 나가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주로 실내에 머물다 보니 신체활동이 적어지고 행동장애도 생길 수 있다. 운동부족으로 살이 찌거나 무력해지기 십상이다.

직장을 다니거나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며 바깥출입을 하는 경우에는 그나마 덜하지만, 집안에 있는 시간이 많은 전업주부인 경우에는 고층아파트에 살면 사회적으로 격리되어 정신건강을 해칠 수 있다. 5세 이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와 그 아이들은, 젊은이와 노인에 비해 높은 곳에 사는 것에 부정적인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어린이는 고층건물에 살면 호흡기 질환에 잘 걸리고 신경질적인 성격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증거도 제시되어 있다.

고층건물에 살기 때문에 더 잘 걸리는 병도 있다. 봄 여름에 꽃가루 때문에 생기는 알레르기성 비염인 ‘건초열(乾草熱, hay fever)’이 그렇다. 한국에서는 환절기에 코감기라 하여 가볍게 앓는 정도의 질병이지만, 미국 같은 곳에선 전 국민의 10% 가까이가 건초열 환자이고 증상도 콧물 기침 결막염에 호흡곤란까지 꽤 심각한 병이다.

건초열의 원인이 꽃가루이기 때문에 도시보다는 시골의 환경이 더 관련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스페인 연구진이 조사를 해보니 오히려 도시사람들이 꽃가루에 대한 민감도가 높게 나타났다. 도시사람이라도 1층에 사는 사람들보다 높은 층에 사는 사람들이 민감도가 높았다.

이유인즉슨 대기 중의 꽃가루 분포를 생각해보면, 아침에 떨어져 나온 꽃가루가 낮에 점차 기온이 높아지면 공기 흐름을 따라 자꾸 위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높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높이 떠오른 꽃가루에 노출되기 때문에 건초열에 걸릴 확률도 높아지는 것이다.

20층은 가뿐히 넘어가는 초고층 아파트와 주상복합건물이 곳곳에 솟아오르고 있다. 몇 년 전 세상 사람들 입길에 오르내렸던 타워팰리스가 그랬듯 요즘엔 소위 ‘랜드마크(landmark)’ 아파트가 프리미엄까지 붙어 거래된다고 한다. 그 지역의 상징처럼 우뚝 선 거대한 고층건물은 소유자의 재력과시에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건강 관리에는 그다지 바람직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리히터 규모 8.0의 강진도 견딘다는 내진설계에 자동환기장치와 산소공급시스템까지 갖췄다지만, 여전히 바람 많이 불고 지진이라도 나는 날엔 불안하고 가끔은 창문도 활짝 열어보고 싶다는 타워팰리스 주민의 푸념이 예사롭지 않다.

인구밀도에 비해 녹지 공간도 턱없이 부족하고, 자연환기도 잘 되지 않으니 집안을 떠도는 오염물질 때문에 호흡기질환이나 피부질환에 걸릴 위험도 높다. 게다가 높이 떠 있고 세상과 격리된 느낌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도 꽤 있다는 증언이다.

자연과 가까운 삶일수록 사람답게 사는 삶이다. 고층건물의 번들거리는 파사드에서 눈길을 거둬 주변을 둘러보자. 환경도 지키고 건강도 지키는 삶터를 가꾸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 

글-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한국 환경건강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