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이 아기를 안고 있을 때는 남성호르몬의 일종인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 양이 급격히 줄어들고, 이런 현상은 심지어 아기 인형을 안고 있을 때도 일어날 수 있다. 결혼한 남성은 자녀 유무와 관계없이 독신남성보다 테스토스테론 양이 적다.” 하버드 대학의 인류학 연구팀이 수행한 ‘남성이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되면서 남성호르몬의 양이 어떻게 변해가는가’라는 연구에서 밝혀진 점이다.(하버드대학 발간,『Gazette』, 2002년 9월호 참조) 연구팀은 미국 보스턴 출신의 남성 58명을 세 그룹(독신자, 자녀가 없는 기혼자, 자녀가 있는 기혼자)으로 분류한 뒤, 이들의 테스토스테론 수준을 측정했다. 테스토스테론의 양은 타액분석으로 쉽게 알 수 있다. 58명 중 48명은 20~41세의 연령층에 속했다. 분석 결과 기혼 남성들의 호르몬 수준은 자녀의 유무와 상관없이 비슷했지만, 독신자 그룹의 호르몬 수준보다는 훨씬 낮게 나타났다. 이 연구를 이끈 피터 그레이는 “테스토스테론의 양은 남성이 ‘이성교제’와 ‘부모역할’ 중에서 어느 쪽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지를 암시한다”고 설명했다. 엘리슨 교수는 더 나아가 보스턴, 콩고, 네팔, 파라과이 네 곳의 남성들을 대상으로 연령이 테스토스테론 수준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결과는 모든 지역에서 동일했다. 20대에서는 사람마다 호르몬 수준의 차이가 컸지만, 60대는 거의 비슷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테스토스테론 양이 줄어든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엘리슨 교수는 “여성도 지난 15년간의 연구에서 비슷한 현상을 보였다. 공업화된 서구 선진국의 가임(可姙) 여성들이 저개발국가의 농촌여성들보다 난소 호르몬 수치가 높았다. 한 지역 젊은이들의 호르몬 수준은 그들이 속한 사회의 사회적, 생태적 환경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남성의 연령이 60대가 되어 테스토스테론 수준이 바닥에 이른다면, 이를 두고 ‘남성에게도 폐경(閉經)이 일어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궁금증에 대해 엘리슨 교수는 “그렇게 말하기는 곤란하다. 비록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양은 나이가 들면서 줄어드는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바닥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여성들처럼 마지막 난자까지 모두 다 소모하는 경우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지난 2001년 한해 동안 미국의 의사들은 성적 욕구를 높이고 노화를 늦추며 근육과 뼈의 손상이 줄어드는 효과를 기대하며 병원을 찾은 남성환자들에게 백만 건 이상의 호르몬 처방전을 발행했다. 호르몬요법이 효과가 있는지 입증하는 결과가 아직까지 단 한 건도 없었지만, 아직도 많은 남성들은 테스토스테론 패치(patch)나 연고의 사용을 원하고 있다. 간혹 운동선수들도 성적을 높이기 위해 스테로이드 호르몬제를 찾는 경우가 있다. 몇 년 전 미국 프로야구의 홈런왕 마크 맥과이어도 남성호르몬제를 사용한 바 있다고 시인했다. 호르몬요법에 대한 엘리슨 교수의 반응은 냉담하다. “수많은 중년 남성들이 안드로겔(Androgel)이라는 호르몬 연고를 사용하고 있지만, 최후 결과는 무엇이겠는가? 호르몬요법이 남성들에게 가정을 소홀히 하고 외도를 더 많이 하도록 만들까? 아니면 결혼생활에 활기를 불어넣을까? 다년간 스테로이드 호르몬제를 사용한 운동선수에게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까?”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을수록 전립선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분명한 연구결과가 있다. 심장병의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증거도 있다. “그 동안 전 세계 수 많은 폐경기 여성들에게 폐경으로 인한 후유증을 덜어주리라 믿고 실시한 합성에스트로겐제 요법이 지금 대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남성들은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인위적인 신체적 혜택을 누리려고 약물을 투여하는 행위에는 종종 엄청난 대가가 따른다. 이를 명심하면 안드로겔 같은 호르몬제를 써보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엘리슨 교수가 남긴 마지막 충고다. 글-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