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부모의 사회경제적 수준, 성인시절의 건강수준에 영향

“유년시절을 사회경제적 수준이 낮은 집안에서 보낸 사람은 사회경제적으로 형편이 좋은 집안에서 자라난 사람에 비해 성인이 되어서 건강상태가 양호하지 못하다”는 결과가 발표되었다.(『랜싯(The Lancet)』 제360호, 1640-1645쪽, 2002년 11월 참조) 어릴 적 생활환경이 미래의 건강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뜻한다.

뉴질랜드의 오타고 대학(University of Otago) 의대 사회의학 연구팀은 어렸을 때 자신이 경험한 사회경제적 환경이 성인이 되어서 건강상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했다.

1972년 4월~1973년 3월 사이에 뉴질랜드의 더니든(Dunedin) 시에서 태어난 사람 1,000명을 연구대상으로 선정했다.

사회경제적 수준은 어린 시절의 경우 출생부터 15세가 될 때까지 2년마다 측정한 부모의 직업(교육, 소득수준 포함)에 대한 점수의 평균값을, 성인시기는 연구를 종료한 26세 때의 직업에 대한 점수를 기준으로 삼아 각각 상중하 3단계로 구분했다.

성인이 되었을 때의 건강상태 지표로 삼은 요소는 ①육체적 건강상태(신체질량지수. body mass index, BMI), 혈압, 순환호흡(cardiorespiratory) 능력, 허리 대 엉덩이둘레 사이즈의 비율(Waist-Hip ratio, WHR), ②치아의 건강상태(충치 수, 치석, 잇몸출혈, 치주질환), ③정신건강 및 약물의존도(우울증, 흡연 및 알코올 의존성) 등이고, 이 변수들을 각각 어린 시절과 성인이 되었을 때의 사회경제적 수준과 비교했다.

연구결과 성인시기(26세 때)의 건강상태는 어릴 적 사회경제적 수준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아래의 표와 같다.

성인기의 육체적 건강상태는 어린 시절의 사회경제적 수준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어린 시절이 성인인 당시의 환경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사회경제적 수준이 높은 집안에서 자라난 사람일수록 BMI, WHR, 혈압의 수치가 낮고, 순환호흡 상태도 양호한 것으로 드러났다.

성인시기의 치아 건강상태 역시 어린 시절의 사회경제적 수준에 영향을 미쳤다. 사회경제적으로 성장환경이 좋은 사람일수록 모든 치아건강 상태가 양호했다. 반면 치석의 비율은 성인일 때 환경이 유년시절의 환경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치아상태를 보면 그 사람의 사회경제적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는 치과의사들의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결과다.

성인시기의 정신건강과 약물남용의 상태에서는 어린 시절의 사회경제적 수준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작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오히려 성인시기 당시의 사회경제적 수준이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연구는 중년기의 사회경제적 수준을 측정하여 노년기의 건강상태(주로 심혈관 질환)와 비교한 기존의 연구들과 달리, 참가자의 출생부터 현재까지 전 기간을 관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기존 연구들이 전반적으로 가난한 시절이었던 1900년 초반~중반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반면, 이번 연구는 사회경제적 수준이 예전에 비해 크게 향상된 1972~73년에 태어난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 큰 강점이다.

물질문명이 발달하고 소득수준이 향상된 선진국의 경우에도 어렸을 때 생활환경이 성인시기의 신체적 건강상태와 치아건강, 정신건강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볼 때, 물질적 풍요와 어린 시절의 사회경제적 여건이 성인의 건강상태에 의미 있는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학자들의 기대는 어긋난다.

연구자들은 “어렸을 때 자신이 처한 사회경제적 수준이 적절한 영양섭취와 질병치료의 기회, 위생적인 주거환경 등과 같은 요인에 영향을 미치고, 이런 영향이 성장초기에는 잠재되어 있다가 성년이 되었을 때 구체적으로 건강수준에 반영되어 나타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한 “사회적으로 높은 수준에 있는 부모들은 건강수준에 대한 기대치가 높을 것이고, 이런 가치관이 자녀의 건강을 돌보는 데 일찍부터 반영되어 그들의 건강증진에 기여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어린 시절의 사회경제적 수준이 성인기의 건강상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해서, 성인이 된 현재의 건강상태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몇몇 질병들은 그때의 사회경제적 수준에 영향을 받는다.

이 연구결과는 정책 차원에서 고려할 만하다. 성년기의 건강한 삶을 증진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프로그램이 되도록 빨리 어릴 때부터 혜택을 입을 수 있도록 시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훗날 사회의 질병부담을 효율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저소득층 복지수준 증대, 결식아동 지원,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하여 가난한 사람이 경제적 부담을 느끼지 않으면서 꼭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정책 등이 잘 추진되어야 한다.

표. 어린 시절의 사회경제적 수준(下:上 집단간 비교)에 따른 성인시기(26세)의 건강상태

성인시기 건강상태 지표
결과/결과에 대한 해석

육체적 건강상태
(이하 공통적으로) “下群이 上群에 비해”
신체질량지수(BMI) 1.95배* 비만에 더 가깝다
허리:엉덩이 비율(WHR) 1.57배* 허리둘레 비율이 더 크다 (사과형)
혈압 2.58배* 혈압이 더 높다
순환호흡 능력 – 2.61배* 순환호흡 상태가 더 나쁘다

치아 건강상태
치석 비율 0.14배* 치석의 비율이 더 높다
잇몸출혈 비율 10.76배* 잇몸출혈 비율이 더 높다
치주질환 비율 2.88배* 치주질환 비율이 더 높다
충치4개 이상 비율 3.18배* 충치발생 비율이 더 높다

정신건강 및 약물의존도
우울증 비율 0.63배 우울증 비율이 더 높다
알코올 의존도 비율 1.80배 알코올 의존도 비율이 더 높다
흡연 의존도 비율 3.81배 흡연 의존도 비율이 더 높다

(1)BMI – 자신의 몸무게(kg)를 신장의 제곱(m2)으로 나눈 값. 단순 ‘체중’보다 질병예측 차원에서 더 유용한 지표로 여겨짐.

(2)WHR – 가장 가는 허리둘레 수치를 가장 큰 엉덩이둘레 수치로 나눈 값. 지방이 축적된 부위에 따라 사과형과 서양배형으로 체형을 나눈다. 허리둘레가 더 두꺼운 사람(사과형)은 심장질환이나 당뇨병 발생의 위험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성은 WHR이 0.95, 여성은 0.8 이하가 바람직하다.

(3) * – 95% 유의수준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함(significant)’. 그 결과가 우연이 일어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뜻이며, 통계적 유의성이 나타나면 결과에 대한 신뢰도는 더 높아진다.

글-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