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아버지의 슬픈 자화상, 기러기 아빠

자녀를 해외로 유학 보내고 뒷바라지를 위해 아내까지 함께 떠나 보낸 뒤, 자신은 가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자녀의 성공에 대한 희망만 안은 채 외롭게 살아가는 아버지. 언제부턴가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가족애가 끔찍한 ‘기러기’에 빗대어 ‘기러기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드라마나 뉴스에서 기러기 아빠는 고독과 경제적 부담감 때문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겪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런 삶이 길어지면 치명적인 건강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구체적인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되었다. 2004년 스웨덴 우메오 대학 연구진은 1985년과 1990년 두 차례에 걸쳐 스웨덴 인구 및 주거 센서스 자료에 나타난 68만2919명의 남성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1991년~2000년 사이의 사망률을 분석한 결과를 보고했다. 1990년 당시 이들은 29~54세였다.

이에 따르면, 자녀 및 부인과 떨어져 혼자 지냈던 남성은 함께 살았던 남성들에 비해 일반 사망률(1.9배)과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률(1.7배)이 높게 나타났다. 특히 알코올 및 약물 중독으로 인한 사망률(4.7배), 낙상 사망률(4.0배), 자살 사망률(2.3배), 폭력 사망률(2.5배), 교통사고 사망률(1.7배), 폐암 사망률(1.3배)이 높았다. 부인과 자녀가 이를 테면 아버지의 생명을 지키는 수호신이란 암시가 아닐까?

혼자 남은 아버지에게 왜 이런 불행한 현상이 일어나는지 정확한 이유를 대기는 힘들지만, 연구진은 “혼자 지내다 보면 어려운 일이 발생했을 때 가족으로부터 유?무형의 지원을 받을 수 없어 스트레스 관리능력이 떨어지고, ‘가족’이라는 통제장치에서 멀어진 아버지는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생활습관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이 같은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라는 설명을 제시한다.

일찍이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켐은 가정 내에 자녀를 둠으로써 얻는 이익을 입증한 바 있다. 자녀와 함께 하는 부부는 스스로 생각하는 건강수준이나 만성질환, 육체적 편안함 등에서 자녀가 없는 커플에 비해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함께 사는 자녀가 아버지에게 훌륭한 동반자이고,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02년 미국 하버드 대학 인류학 연구팀은 남성이 아기를 안고 있는 순간에는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양이 감소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기혼남성의 테스토스테론 수준이 독신남성보다 낮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남성이 테스토스테론 수준이 낮아지면 가사를 돌보거나 부인, 자녀와 함께 지내려는 성향이 강해지고, 밖에서 술을 마시며 친구와 어울리거나 다른 여자를 만나려는 노력은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을수록 전립선암에 걸릴 위험이 높고, 심장병 발생 위험도 높다는 증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혼을 하고 자녀와 떨어져 사는 남성은 이혼 후 자녀들과 함께 사는 남성보다 건강수준이 낮다는 연구결과도 보고된 바 있다. 양육권이 없는 아버지가 이혼한 뒤에도 정기적으로 아이들을 만나는 게 실은 아이뿐만 아니라 아버지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요즘 부쩍 출산율 감소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저런 출산장려정책이 나오고 있지만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젊은 부부가 늘어나는 추세다. 한편 기러기 아빠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득이 될 지는 냉정히 따져봐야 할 것 같다. 한 지붕 아래 함께 살면 더 큰, 아니 무한한 가치를 발산할 수 있는 공동체가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다.

글-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