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홍콩에서는 정체불명의 독감이 유행했다. 독감 바이러스는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던 환자 18명 중 6명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이에 의구심을 갖고 몰려든 각국의 과학자들은 이 병원체가 그 동안 새한테서나 발견되던 ‘조류독감(bird flu)’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홍콩에서는 신선함을 위해 즉석에서 닭을 도살하여 판매하는 관행이 남아있는데, 이 과정에서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파된 것이다. 결국 홍콩 당국은 예방차원에서 홍콩에서 사육되는 닭, 오리, 거위 등을 모두 도살하도록 했다. 현재 과학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사람이 조류독감 바이러스와 인간에게 만연하는 독감 바이러스에 동시에 감염되는 경우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두 바이러스가 인체 내에서 서로 섞이는 ‘스와핑 현상’이 일어나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기존의 독감 바이러스처럼 사람에게 쉽게 전파되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네덜란드의 과학자들은 닭과 자주 접촉하는 사람들은 예방차원에서 반드시 독감 예방주사를 맞으라고 권고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바이러스 학자인 로버트 웹스터 박사는 “1997년 홍콩의 조류독감 바이러스 출현은 ‘생물학적 대재앙’의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지금까지 지구상에 출현한 모든 독감 바이러스의 유전자들은 고스란히 조류 생물에게 보존되어 있고, 앞으로 이것이 진화를 거듭하면서 인간을 비롯한 다른 종(種)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 나아가 1918년 전 세계에서 2천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the Spanish Flu)’의 재현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2003년 12월에 한국에서도 1997년 홍콩에서 발생한 것과 같은 종류의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다. 다행히 아직까지 이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전파된 흔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예에 비춰볼 때 그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으므로 대책이 필요하다. 더욱이 독감이 유행하는 시기에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출현했다는 사실은 여러 모로 불리하다. 조류독감 바이러스에 사람이 감염되면 독감과 유사한 증세가 나타난다. 어떤 사람들은 유행성 결막염처럼 눈이 충혈되기도 한다. 감염자 식별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정보다. 조류독감을 예방하려면 조류와 접촉을 피하고, 독감 예방에 도움이 되는 기본적인 위생 수칙들을 준수해야 한다. 인간 독감 바이러스와 동시에 감염되는 경우에 대비해서 누구나 독감 백신을 맞아 두는 게 좋다. 이번에 처음 맞이하는 조류독감에 대해 다른 나라의 사례를 철저히 학습하여 초기 단계에서부터 가능한 모든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홍콩에서도 12월에 조류독감 환자가 발생했지만 이번에는 무사히 넘긴 그들의 노하우를 배워야 한다. 글-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