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이 C형 간염을 앓고 있다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입맞춤은 자제하는 게 좋겠다. 미국 워싱턴대학 연구진은 2003년 9월 중순 시카고에서 열린 제43차 ICAAC(The Interscience Conference on Antimicrobial Agents and Chemotherapy) 연례 학회에서 C형 간염 보균자의 침 속에서 C형 간염을 일으킬 수 있는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연구진은 C형 간염환자 12명을 대상으로 21일 동안 매일 그들의 침을 채취해서 바이러스가 있는지 검사했다. 그 결과, 전체 248개의 표본 가운데 52개에서 바이러스 양성반응이 나타났다. 또한 침 속에 바이러스가 많이 들어 있을수록 체내에도 더 많은 바이러스가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지금까지 C형 간염 바이러스는 수혈이나 장기이식, 상처를 동반하는 성관계, 마약 복용자들의 주사기 공동사용 등 직접적으로 타인의 혈액과 접촉하는 경우에만 전파가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수술 중 의료기구에 상처를 입기 쉬운 의료인과 C형 간염에 걸린 임산부가 낳은 아기도 감염 위험이 높다. 최근에는 C형 간염에 걸린 사람이 술을 마시면 증세가 악화될 뿐만 아니라 약물치료도 방해를 받는다는 보고가 나왔다. 아쉽겠지만 C형 간염 보균자는 술을 멀리해야 할 것이다. C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나타나는 증상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사람은 아무런 증상이 없다가 몇 년 후에야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때는 이미 간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기 시작한 때일 가능성이 높다. C형 간염이 ‘침묵의 살인자’라고 불리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반면, 감염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바로 극도의 피로감과 불쾌감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가장 흔한 증상은 체중감소, 피로감, 감기 증세, 황달, 메스꺼움, 집중력 저하, 복통 등이다. C형 간염 바이러스 감염자의 20% 정도는 6개월 내에 치료가 가능하지만 나머지 80%는 만성질환 환자가 되며, 간경변이나 간암 등으로 악화되어 목숨을 잃는 경우도 다른 유형의 간염보다 훨씬 높다. 그래서 C형 간염은 에이즈에 버금가는 치명적인 질병으로 꼽힌다. 혈액으로 전파되기 때문에 미국에서 HIV(에이즈 유발 바이러스) 감염자의 30%는 동시에 C형 간염 보균자이기도 하다. 연구진은 C형 간염 보균자의 침 성분에 포함된 극소량의 혈액이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아닐까 추정했다. 감염자가 잇몸질환 등을 앓고 있다면 이때 배어 나온 피가 위험요소라는 것이다. 피가 섞인 침은 키스할 때 상대방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가장 위험한 건 잇몸병이 있는 사람이 C형 간염 감염자와 키스를 하는 경우다. 칫솔, 면도기, 손톱깎이 등을 함께 사용하거나 소독되지 않은 기구로 문신, 피어싱을 하는 행위도 위험하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키스로 C형 간염 바이러스가 전파될 가능성을 그리 높게 보지 않는다. 이번 연구로 그럴 가능성이 제기되었지만 결론이 내려지기까지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이 밖에도 C형 간염의 위험성을 되새기고 예방에 신경 써야 할 이유는 충분히 많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적으로 약 1억 7천만 명의 보균자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최근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도 예방백신이 개발된 B형을 제치고 C형 간염 보균자가 더 많아지는 추세라고 한다. 글-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