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건강수준의 연관성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남성의 수명이 여성보다 짧은 이유 중 하나도 남성이 여성에 비해 위험한 직업에 종사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비슷한 직종에 종사하는 경우라도 일의 내용과 지위에 따라 평균수명에 차이가 날 수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The American Journal of Medicine 제115호, 2003년) 1929년부터 매년 시상되고 있는 ‘아카데미상(일명 오스카상)’은 영화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받고 싶어하는 꿈의 상이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의학 박사들은 오스카상이 수상자의 수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봤다. 오스카상을 받았거나 후보에 오른 적이 있는 역대 영화감독 255명과 주연배우 297명을 대상으로, 두 직업군 사이에 평균수명을 조사한 것이다. 연구를 마친 2002년 5월 당시까지 사망한 사람은 전체 552명 중 254명이었다. 사망원인은 두 직업군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다. 사고나 중독으로 사망한 경우는 드물었고, 50세 이상 사망자의 비율이 90%에 달했다. 수상 경력이 있는 감독의 평균수명은 똑같은 수상 경력의 배우보다 4.3년이 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후보에만 올랐거나 한번도 후보에 오르지 못한 감독과 배우 그룹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어, 모두 영화감독의 수명이 주연배우보다 길었다. 영화인에게 오스카상은 사망률을 낮추는 특효약(!)이라도 되는 양, 수상 경력과 사망률의 관계도 뚜렷했다. 감독들 중에서도 상을 받은 감독은 후보에만 올랐던 감독보다 사망률이 24% 낮았고, 오스카상을 한 번 이상 품에 안은 감독은 한 번만 받은 사람에 비해 48%나 낮은 사망률을 기록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오스카상을 탔던 영화감독 중 배우를 겸한 경우에는 배우 경력이 없는 감독과 비교해 사망률에 큰 차이가 없었지만 영화배우 중 감독 경험이 있는 사람은 순수하게 배우였던 사람들에 비해 사망률이 34%나 낮았다는 사실이다. 감독이라는 한 단계 높은 지위를 경험하는 것이 사망률을 낮추는 데 기여한 게 아닐까. 과거에 수행된 비슷한 연구에서도 오스카상을 한 번이라도 받은 배우들은 후보에만 오른 배우들에 비해 평균수명이 3.9년 길게 나타나서, 이번 연구 결과의 신뢰를 더한다. 반면 아카데미상을 받은 시나리오 작가들은 후보에만 오른 작가들보다 평균수명이 3.6년 짧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시나리오 작가의 경우 수상 경험이 오히려 이후의 집필활동에 스트레스 유발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짐작하게 하는 통계다. 이번 연구는 비슷한 직업을 가졌더라도 지위에 따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다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직업은 인격 함양의 발판이자, 소득의 원천인 동시에 미래의 건강수준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직업에 따른 임금과 업무 내용의 차이는 영양공급, 주거환경, 의료서비스, 정신건강 등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이는 건강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수명으로 표출되기 때문이다. 글-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 |